학폭에 아들 잃고…장학사업 헌신한 이대봉 참빛그룹 회장
1941.12.15∼2024.10.1
(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 = "다들 미쳤다고 했지요. 아들을 죽인 원수의 학교에 왜 돈을 투자하느냐고. 그런데 저는 내 아들의 꿈이 자라던 학교라 그냥 문 닫게 놔둘 수가 없었어요. 우리가 죄 짓지 않고 바르게 살기 위한 일이라고 가족을 설득했습니다."(2023년 11월 조선일보 인터뷰)
2010년 도산 위기에 놓인 서울예고와 예원학교를 인수해서 키우고, '서울아트센터'를 개관한 이대봉(李大鳳) 참빛그룹 회장이 1일 밤 세상을 떠났다. 향년 83세.
1941년 12월 경남 합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고교 1학년 때 집안 형편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신문 배달, 부두 하역 일을 거쳐 서울 용두동에서 고물 장사를 했다. 어렵게 모은 돈으로 1975년 동아항공화물㈜을 세웠고, 이를 기반으로 참빛가스산업, 참빛동아산업 여러 계열사를 운영했다. 한국항공화물협회 회장도 지냈다. 베트남 호텔, 골프장 사업에도 진출했다.
고인이 1988년 장학회를 세우고 2010년에는 학교를 인수하는 등 교육에 관심을 돌린 배경에는 1987년 당시 서울예고 2학년이었던 막내 아들 이대웅군이 학폭으로 목숨을 잃은 사건이 있었다.
2021년 3월4일 방송된 EBS '인생 이야기 파란만장'에 출연한 고인은 아들을 숨지게 한 학폭 가해자(서울예고 상급생)를 용서한 사연을 고백했다. "아들이 고등학교 2학년 때 3학년 올라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성악 실력과 재능이) 뛰어나다 보니까 시기와 질투를 받은 것 같다"고 했다.
고인은 당시 미국 출장 중이었고, 한밤 중에 아들에게 큰일이 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아들이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아버지로서 당연히 분노했다. 지난해 조선일보 인터뷰에선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는 학교를 다 부숴버리겠다고 다짐했지요. 회사 직원들이 학교로 몰려가 항의하는 바람에 교장 선생님이 도망갈 정도였죠"라고 했다.
그런데도 가해자를 용서한 이유는 뭐였을까. EBS에 출연했을 때 고인은 "비행기 타고 14시간 타고 서울 가는 와중에 '저 아버지가 혹독하고 돈 밖에 모르니까 하나님이 데리고 가셨다'는 이야기는 안 들어야겠다 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에는 "막상 영안실에 평안하게 누워 있는 아이를 보니 눈물만 났어요. 내 죄와 업보가 많아 이렇게 된 건가 싶고. 복수를 한다고 아이가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잖아요. 내가 난동을 피우면 아버지가 저러니 아들이 벌을 받았다 할 거고요. 제가 가톨릭 신자인데, 아들을 위해서라도 '원수를 사랑하라'는 하느님 말씀을 실천해 보기로 한 겁니다."고 설명했다.
담당 검사조차 선처할 수 없다고 한 가해자를 용서해달라며 직접 구명운동에 나섰다. 고인은 EBS에 출연해 "검사에게 (아들의 일을) 운명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계명으로 생각하고 용서하겠다고 했다"며 "경력 20여년 검사가 자기 자식을 해친 사람을 용서한 사람은 세계에도 없다고 하더라"고 했다. 가해자에겐 "우리 아들을 기억해달라"고만 했고, "절대 찾아오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그 애를 보면 혹시라도 내가 무너질까봐서"라는 게 이유였다.
서울예고 학생들은 돈을 모아 학교 안에 음표 모양의 추모비를 세웠다. 이대웅군 사건 이후 서울예고에선 학폭이 급감했다.
고인은 1988년 '이대웅음악장학회'를 설립했고, 지난해까지 "35년 동안 3만여 명의 학생들을" 도왔다.
고인은 2010년 도산 위기에 놓인 서울예고와 예원학교를 인수, 학교법인 서울예술학원의 이사장이 됐다. 지난해 서울 평창동에 서울예고 개교 70주년을 맞아 '서울아트센터'를 설립했다. 사업차 진출한 베트남에서도 장학사업을 벌였다. "월남전 때 우리가 잘못한 게 많아서 소년소녀가장들을 돕고 있어요"라는 이유였다.
고인은 EBS에 출연했을 때 가해자를 용서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냐는 질문에는 "후회한 적은 없다"며 "서로서로 용서하면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결정"이라고 대답했다.
chungwon@yna.co.kr
※ 부고 게재 문의는 팩스 02-398-3111, 전화 02-398-3000, 카톡 okjebo, 이메일 jebo@yna.co.kr(확인용 유족 연락처 필수)
저작권자 ⓒ 위클리 리더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