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8월의 뜨거운 햇살이 김포공항을 달구던 그날, 여기 저기서 젊음의 활기로 가득한 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느 누군가는 기타를 가지고 온 모습도 있었다. 이렇게 우리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던 아름다운 땅, 뉴욕주의 포츠담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으며, 우리의 가슴은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뉴욕주립대학교 포츠담 캠퍼스, 그곳은 우리의 꿈과 열정이 꽃피울 새로운 터전이었다. 이전부터 가끔 이곳의 영어교육학과에 대해서는 테솔(TESOL) 공부를 할 때부터 많이 들어 보았던 곳이다. 최고의 전통과 경험이 가득한 꿈의 터전이었다. 그리고 이곳에 영어교육학이라는 공통된 목표 아래 모인 우리는, 서로 다른 배경과 이야기를 가진 청춘들이었다.
포츠담에 도착한 첫날 밤에는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그 학교와 마을. 하지만 바로 그 다음 날부터 우리는 이 조용하고 아름다운 대학 도시의 매력에 푹 빠졌다. 울창한 자연의 푸르름으로 둘러싸인 캠퍼스는 마치 동화 속 한 장면 같았다. 비록 대도시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이곳의 고요함은 우리의 학문적 열정을 더욱 불태웠다. 강의실에서, 도서관에서 혹은 잔디밭에 둘러앉아 젊음과 학문으로 모였고, 때로는 기숙사에서 밤새도록 나눈 토론들과 삶의 이야기들은 우리의 지식을 넓히고 우정을 깊게 만들어 갔다.
가을이 깊어가며 캠퍼스는 황금빛 단풍으로 물들었고, 우리는 그 아름다움에 취해 매일을 버텨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국경선을 넘어선 캐나다 여행. 오타와를 걸쳐 토론토에서 나이아가라 폭포로 그리고 도깨비 드라마의 배경인 퀘벡까지 함께 한 수 차례의 여행 길에서는 서로의 삶을 응원하고 각자의 미래의 꿈을 설계하는 귀한 시간들이었다.
어느 날 그 곳에도 곧 겨울이 찾아오고, 포츠담의 혹독한 추위는 우리를 시험하곤 했다. 때로는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기온과 끝없이 내리는 눈은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되었다. 하지만 이 극한의 환경은 오히려 우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함께 눈을 치우며, 넘어지지 않도록 눈길에서 서로의 손을 잡아주며, 식당에서 라면을 끊여 먹고, 때로는 가까운 월마트로 쇼핑을 가기도 하고 그리고 그곳에서 알게 된 한인분들의 초대를 받기도 하면서 우리는 더욱 가까워졌다.
추운 겨울밤, 도서관에서 기숙사로 옮겨 밤을 새워 공부하다 문득 창밖을 바라보면, 캠퍼스를 뒤덮은 하얀 눈과 고요한 밤의 풍경이 우리의 마음을 달래주곤 하였다. 때로는 깊은 밤 갑자기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캠퍼스를 걸었던 순간들, 그 순간의 설렘과 자유로움은 지금도 생생하다.
봄이 오고 캠퍼스에 새싹이 돋아날 때면, 우리의 마음도 함께 부풀어 올랐다. 그곳에서 사귄 미국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 늘어가고, 때로는 인생의 귀한 가이드 역할을 하던 폴 선교사의 따스함에 가슴이 벅차 오르기도 하면서, 그렇게 각자의 길을 찾기 위해 많은 이들과 함께 추억을 쌓던 시기였다. 그리고 녹음이 짙어지는 여름, 우리는 캠퍼스 잔디밭에 모여 피크닉을 즐기기도 하면서 서로의 젊음을 응원했다. 이렇게 계절이 바뀌어 갈수록, 우리는 서로를 걱정해 주고, 격려하면서 함께 성장했던 것 같다.
모든 학문의 과정이 끝나갈 무렵,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작별을 준비했다. 어떤 이는 눈물로, 어떤 이는 웃음으로, 또 어떤 이는 조용히 마음속으로 이별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알고 있었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갔고, 우리는 어느새 학위를 손에 쥐고 각자의 길을 찾아 한국으로, 미국으로 혹은 캐나다로 돌아왔다. 누군가는 학원에서, 또 다른 이는 대학교에서 전공을 살려 강의를 시작했다. 이 모두는 우리가 배우고 경험한 것들을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는 일이기에 정말로 가슴 벅찬 시간들이었다.
우리 중 일부는 더 높은 곳을 향한 열망을 품고 다시 미국으로, 영국으로 박사 과정을 밟기 위해 떠나기도 했다. 또 다른 이들은 가정을 꾸린 한 참 뒤,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캐나다로 향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경험하고 간직했던 그 값진 유학 생활을 자녀들에게도 선물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우정은 거리와 시간을 초월했다. 한국에서는 매년 수차례 정기 모임을 가지며 서로의 근황을 나누고 추억을 되새기기 시작했다. 각자의 삶은 달랐지만,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포츠담에서의 아름다운 기억들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2024년 10월 가을 모임 때, 우리는 충청도에 있는 계룡산으로 단풍 여행을 떠났다. 붉게 물든 단풍잎을 바라보며, 우리는 잠시 지난 20여 년의 시간을 되돌아보았다. 포츠담에서의 첫 만남, 힘들었던 유학 생활, 각자의 길을 찾아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기를 반복했던 시간들. 그 모든 순간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어 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도 각자의 인생에서 그들만의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다.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들로 매 챕터를 쓰고 있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세월조차 절대 막지 못하는 것은 지금 계룡산의 단풍이 짙게 물들어 가듯 우리의 삶과 우정도 더욱 깊고 풍성해져 간다는 사실이다.
갑사로 가는 길목에 서서 우리는 잠시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언젠가는 모두가 다시 포츠담의 뉴욕주립대를 방문하리라. 그곳에서 우리는 젊은 날의 꿈과 열정을 되새기며, 여전히 빛나는 우정을 확인할 것이다. 시간이 흘러 우리의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할 때까지, 아니 그 이후로도 이 특별한 인연은 계속될 것임을 믿는다.
솔직히 지금까지의 우리의 삶의 이야기는 단순한 동창회 모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꿈을 향한 도전, 서로를 향한 믿음, 그리고 함께 웃고 울던 시간이 만들어낸 깊은 유대감의 증거다. 계룡산의 단풍이 매년 그곳을 찾는 이들을 더욱 새로운 모습으로 맞이하듯, 단풍보다 짙은 우리의 우정도 해를 거듭할수록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더해 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포츠담을 찾을 그날, 우리는 자신들의 이야기가 단순한 추억이 아닌, 삶의 아름다운 여정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만나고, 이야기하고, 함께 웃으며 서로의 삶을 응원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여정의 끝은 어디일까?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가 함께 걸어온 이 길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의미 있는 순간들로 가득 차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여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마치 끝없이 단풍빛으로 이어지는 이 가을 하늘처럼.
*2004년도에 졸업한 한 학생이 보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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