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는 제 자리에서 잠시라도 멈추는 적이 없다. 특히 AI가 주도하고 있는 2025년도에 개인적으로 현 크리스천 리더들에게 정직하게 묻고, 다시 교회가 회복해야 할 7가지 부흥의 선제 조건을 찾고자 한다. 그러한 고민 중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복음' 과 '사역'이라고 볼 수 있겠다. 우선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면서 계속 이야기 하고자 한다.
1. 복음은 여전히 나의 사역 중심에 있는가?
그 첫 번째 던지고자 하는 질문은 "복음이 여전히 우리의 사역 한 가운데 있느냐?"는 것이다. AI는 성경을 요약하고 설교를 분석하며, 전도용 콘텐츠까지 자동으로 제작한다. 기술은 빠르고 정교해졌으며, 이제는 목회 현장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변화의 한복판에서 교회는 한 가지 본질적인 질문 앞에 서야 한다. “우리는 여전히 복음만으로 충분하다고 믿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복음은 단지 한 개념이나 메시지가 아니다. 복음은 교회의 존재 이유이고, 모든 사역의 출발점이며, 궁극적인 목적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는 점점 복음이 아닌 ‘다른 것들’에 중심을 두고 있지는 않은가? 감정적인 위로, 삶의 팁, 도덕적 조언, 심리학적 설명이 복음을 대신하는 순간, 교회는 본질을 벗어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회개와 구원의 메시지가 설교와 사역 속에서 점점 줄어들고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방향 전환이 아니라 ‘사명 상실’이다.
현대 교회는 기술적으로 풍성해졌고, 예배는 전문화되었으며, 콘텐츠는 다양해졌다. 하지만 그 중심에 복음이 없다면, 교회는 아무리 사람을 모아도 결국 본질을 잃는다. 복음은 부흥을 일으키는 능력이며, 사람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힘이다. AI가 아무리 정교해도, 복음을 대신할 수는 없다. 오직 복음만이 죄를 깨닫게 하고, 사람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정직하게 물어야 한다. 나의 설교, 나의 메시지, 나의 콘텐츠는 복음을 얼마나 분명하게 담고 있는가? 단지 좋은 말로 포장된 종교적 메시지는 아닌가?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표현은 많지만, 그들의 영혼을 깨우는 복음의 칼날은 점점 흐려지지 않았는가?
복음은 단순히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통해 살아나야 한다. 예배의 감동, 목회의 방향, 훈련의 목표, 전도의 중심 모두가 복음에 뿌리를 내릴 때 교회는 다시 살아난다. AI 시대가 던지는 도전 앞에 우리가 첫 번째로 회복해야 할 것은 기술이 아니라, 복음의 본질을 향한 절대적인 확신과 헌신이다.
2. 나는 제자를 세우고 있는가, 아니면 사람을 모으고 있는가?
다음 질문은 "여전히 제자를 만나고자 하느냐?"는 것이다. 교회는 오랜 시간 동안 사람을 ‘모으는 일’에 익숙해져 왔다. 주일 출석자 수, 등록 교인 수, 행사 참석 인원이 사역의 주요 성과처럼 여겨졌고, 그 수치가 곧 부흥의 증거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 한 번도 군중을 모으는 데 집중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군중보다 제자들에게 집중하셨고, 그들과 함께 먹고 자고 걷고 가르치셨다. 교회의 본질은 사람을 세우는 일, 곧 제자를 만드는 데 있다.
현대의 많은 교회는 시스템은 갖추었지만, 제자를 만드는 구조는 약하다. 교회 안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움직이고 있는지보다, 누가 예수님을 따라 실제 삶을 변화시키며 살고 있는지를 살피는 일이 더 중요하다. 교재 한 권을 끝내고, 수료증을 받고, 교육 과정을 마쳤다고 해서 그것이 곧 제자가 된 것은 아니다. 제자훈련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 자체를 바꾸는 과정이다. 그것은 가까이에서 함께 걸어가는 동행의 여정이다.
AI는 개개인의 학습 스타일과 반응을 분석해 맞춤형 콘텐츠를 추천할 수 있다. 하지만 진짜 제자훈련은 알고리즘이 아닌 ‘동행’과 ‘헌신’에서 자란다. 우리는 과연,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복음이 그의 삶 깊숙이 들어가도록 돕고 있는가? 수많은 사역 일정과 프로그램 속에서, 우리는 ‘한 사람’을 잃고 있지 않은가?
예수님은 제자들을 통해 세상을 바꾸셨다. 그분은 군중 속에 계셨지만, 제자들의 눈을 보셨다. 오늘 교회의 리더십은, 많은 사람을 설득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한 사람을 예수님의 사람으로 세우는 일에 다시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제자훈련은 시간이 걸린다. 전략보다 헌신이 필요하고, 시스템보다 마음이 필요하다. 부흥은 많은 이들의 박수가 아니라, 깊이 있는 소수의 헌신에서 시작된다.
3. 나는 기술을 복음적으로 해석하고 있는가?
AI에 대해 우리는 두 가지 극단적인 반응을 보인다. 하나는 무조건적인 수용, 다른 하나는 무조건적인 거부다. 어떤 교회는 기술을 단지 ‘도구’로 보며 무비판적으로 도입하고, 어떤 교회는 아예 세속적인 것으로 치부하며 접근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문제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기술을 어떻게 해석하고, 무엇을 위해 사용하는가이다.
기술은 본질적으로 중립적이다. 복음을 돕는 도구가 될 수도 있고, 영혼을 흐리게 하는 방해물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교회는 기술을 두려워하거나 우상화하기 전에, 그것을 복음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을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시대에, 오히려 복음의 본질을 분별하고 지켜낼 수 있는 영적 감수성이 더욱 중요해졌다.
특히 AI는 설교 자료를 추천하고, 성경 콘텐츠를 자동 생성하고, 온라인 성도들의 반응을 분석하는 등 많은 가능성을 제공한다. 그러나 기술이 복음을 대체하지는 못한다. 기술은 복음을 전달할 수 있지만, 회개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정제된 언어는 제공할 수 있지만, 그 언어에 담긴 눈물과 기도는 담지 못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술을 배워야 하되, 더 중요한 것은 복음의 렌즈로 기술을 해석하고 선택하는 능력이다.
목회자는 이제 더 이상 ‘비기술자’로 머무를 수 없다. 단순한 사용 능력을 넘어, 디지털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고 복음적으로 대응하는 책임이 있다. 기술은 시대의 흐름이지만, 교회는 그 흐름 속에서도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AI 시대의 진짜 목회 역량은, 기술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으로 길을 여는 지도력에서 드러난다.
4. 우리의 전도는 여전히 기다림에 머물러 있는가?
“교회에 한 번 와보세요.” 우리는 여전히 이 말에 의존해 전도를 시도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찾아오는 방식’으로 교회를 만나지 않는다. 삶의 문제는 교회 바깥에서 터지고, 관심은 SNS와 유튜브에서 흘러간다. AI는 사람들의 관심사를 추적하고, 검색 패턴을 분석해 필요한 정보를 제시한다. 그런데 교회는 아직도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구조 속에 머물러 있다.
복음은 본래 찾아가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늘 사람들 사이로 걸어가셨고, 사도 바울은 복음을 들고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했다. 전도는 기다림이 아니라, 능동적 접근과 전략적 나아감이 본질이다. 우리는 거리로 나가고, 온라인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들의 언어와 문화, 관심사를 이해하며 복음을 연결해야 한다.
AI는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전도 방식의 길을 열 수 있다. 데이터 기반의 전도 전략, 지역별 필요에 맞는 콘텐츠 설계, 전도 대상자의 반응 분석 등은 모두 가능하다. 문제는 우리가 그런 기회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이다. 전도는 목회의 부속물이 아니라, 교회의 존재 이유다.
복음을 들고 먼저 다가가는 교회, ‘찾아가는’ 것을 넘어서 ‘찾아주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지금은 교회의 문을 활짝 여는 것보다, 복음을 들고 문밖으로 나가는 용기가 필요한 시대다. AI는 문을 열어줄 수 있지만, 복음을 들고 나가는 건 결국 사람이다.
5. 우리가 만드는 콘텐츠는 복음을 깊이 있게 담고 있는가?
오늘날 교회는 수많은 미디어 콘텐츠를 생산한다. 설교 클립, 카드뉴스, 짧은 영상, 큐티 앱, 예배 예고편 등 다양한 형태로 복음을 전달하고자 애쓴다. 그런데 정작 그 안에 담긴 복음의 깊이는 얼마나 충실한가? 빠르고 짧은 콘텐츠가 많아졌지만, 그것이 곧 복음의 충만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15초짜리 영상을 보고 판단하고, ‘좋아요’를 누르지만, 그들의 영혼은 여전히 깊은 진리와 의미를 원한다. 콘텐츠는 사람의 주의를 끌 수 있어도,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선 진정성과 복음의 본질이 담겨야 한다. 기술이 뛰어나도 메시지가 가볍다면, 결국 복음은 소비되고 잊힌다.
교회는 이제 단순한 제작자가 아니라, 복음의 큐레이터가 되어야 한다. 콘텐츠는 교회 홍보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진지한 통로다. 편집과 기획, 디자인과 마케팅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 안에 ‘예수’가 담겨 있지 않다면 우리는 세상의 콘텐츠 기업과 다를 바 없다.
기억해야 한다. 가장 강력한 콘텐츠는 사람이 아니라 복음 그 자체이다. 복음은 시대를 넘고, 문화를 뚫고, 마음을 변화시킨다. 교회는 그 복음을 어떻게 담아낼지,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 복음을 다루는 콘텐츠는 가볍게 만들어질 수 없다.
6. 우리는 다음 세대와 진짜 연결되고 있는가?
다음 세대는 디지털 세계 속에서 자란다. Z세대와 알파세대는 전통적인 예배당보다 온라인 커뮤니티, 메타버스, 영상 콘텐츠를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들은 스스로 질문하며 성장하고, 정답보다 방향을 찾는다. 교회는 이들과 진정으로 연결되고 있는가?
교회가 준비한 프로그램, 찬양, 메시지는 그들의 눈높이에 닿아 있는가? 단지 교회학교, 중고등부라는 공간이 존재한다고 해서 그들을 품고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언어, 그들의 관심, 그들의 방식 안으로 복음이 들어가야 진정한 연결이 일어난다.
AI는 이 세대의 관심사를 분석하고, 어떤 콘텐츠에 반응하는지 알려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복음적으로 해석해 그들의 삶에 스며들게 하는 것은 여전히 교회의 몫이다. 기술이 만든 다리를 건너 복음이 전달되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가 세대를 향한 이해와 공감의 눈을 떠야 한다.
우리가 잃어가는 세대는 단지 교회를 떠난 것이 아니라, 복음을 자신의 삶과 연결하지 못한 것이다. 그들의 이탈은 교회의 실패다. 다음 세대를 위한 새로운 예배 모델, 상호작용적 말씀 교육, 삶 중심의 제자훈련이 시급하다. 지금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한 '시대별 복음 해석자'가 되어야 한다.
7. 기술을 넘어서, 사람을 진심으로 품고 있는가?
AI는 분석하고 정리할 수는 있지만, 울 수는 없다.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고, 눈물로 기도하며, 손을 잡아주는 것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기술은 효율을 높이지만, 공동체는 관계를 세운다. 교회가 부흥하려면,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을 다시 중심에 세워야 한다.
복음은 본래 ‘관계 속에서’ 흘러간다. 예수님은 언제나 사람을 보셨고, 사람과 식사하셨고, 사람과 함께 걸으셨다. AI 시대에 교회가 진짜 싸워야 할 영역은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공동체의 회복이다. 예배당에 사람이 있어도 마음이 없으면 공동체는 무너진다.
초대교회는 떡을 떼고, 서로의 피로를 나누며, 삶을 함께 살아냈다. 그것이 성령의 공동체였고, 그 안에서 부흥이 일어났다. 오늘의 교회는 그 감동을 잃고 있지 않은가? 프로그램은 많고, 봉사는 있지만, 함께 울고 함께 사는 깊은 교제가 사라지고 있지는 않은가?
기술은 도와줄 수 있다. 소통을 연결하고, 정보를 제공하며, 교제를 보완할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사람을 품는 것은 사람이다. 교회는 결국,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가’보다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로 평가받을 것이다.
마무리하며
AI 시대, 교회는 기술을 도입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논쟁할 필요가 없다. 그보다 더 본질적인 물음은 “우리는 여전히 복음을 믿고 있는가?”, “우리는 사람을 세우고 있는가?”, “우리는 진짜 교회다움을 살아가고 있는가?”이다. 이 시대가 교회에 요구하는 것은 더 많은 전략이 아니라, 더 깊은 질문이다. 교회의 미래는 결국, 교회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의 깊이만큼 성장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