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르완다에서 5천 개가 넘는 교회가 문을 닫았다. 정부는 위생, 안전, 건축 규정 미비를 이유로 들었지만, 실제 현장에서 느껴지는 현실은 단순한 행정 조치가 아니었다. 목회자의 학위 요건, 건물 구조의 엄격한 조건, 등록 절차의 과도한 규제 속에서 작은 교회들은 숨 쉴 공간을 잃어버렸다. 그 결과 예배당은 문을 닫았고, 신자들은 집과 골목, 은밀한 공간에서 하나님을 찾는 처지에 놓였다. 그러나 교회 역사는 언제나 증언해 왔다. 문이 닫히면 기도는 더 깊어지고, 외부의 억압이 강할수록 복음의 불길은 오히려 더 순결하고 강렬해진다.


올해는 그 강도의 수위가 한층 더 높아졌다. 이제 외국에서 입국하는 기독교 지도자들이 설교를 하려면 반드시 설교문과 교육 자료를 정부에 제출하고, 사전 검토를 거쳐야 한다는 규정이 새롭게 시행되었다. 설교 속에서 다루어질 수 있는 주제와 표현마저 정부가 ‘허용된 범위’로 제한하는 것이다. 기적, 종말론, 혹은 허위 예언으로 분류될 수 있는 주제들은 금지 목록에 올라 있다. 이는 단순히 설교의 자유를 제한하는 문제를 넘어, 한 국가가 신학적 기준을 정의하고 말씀의 본질을 규제하려는 시도다.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허락 아래 존재해야 하는 듯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국제 기독교 단체들은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세계복음연맹(WEA)은 이번 조치가 국제 인권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선언했고, 오픈도어는 르완다의 기독교 박해 지수가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히 상승했다고 보고했다. 수치와 보고서는 분명히 말한다. 신앙의 자유가 제도적으로 압박받고 있으며, 복음을 전하는 길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역사의 교훈도 분명하다. 복음은 결코 사람의 규제나 권력의 장벽에 의해 가둘 수 없는 생명의 말씀이라는 사실이다.

르완다 정부는 공공의 안전과 사회 질서를 내세우지만, 2백만 르완다프랑이라는 비환급 등록 수수료, 1천 명 창립 회원 요건, 그리고 1천2백 시간 종교 훈련 이수 조건은 사실상 수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을 제도적으로 배제하는 장치다. 이는 “거대한 성”을 짓고, 작은 무리들을 그 성문 밖으로 몰아내는 행위와 같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작은 자들을 멸시하지 말라”(마 18:10)고 가르친다. 하나님은 언제나 약한 자들과 함께하시며, 세상이 배제하는 자들을 들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가신다.

르완다의 현실 앞에서 교회가 던져야 할 질문은 명확하다. “누가 우리의 설교를 검열하는가?” 그러나 그 질문의 이면에는 더 근본적인 물음이 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누구의 말씀인가?” 만일 복음이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이요 성령의 역사라면, 그 어떤 권력도 진리를 가두지 못한다. 닫힌 교회의 문 앞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길은 새롭게 열리며, 억압 속에서 태어난 신앙은 더욱 순결한 믿음을 낳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르완다 교회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들의 눈물이 단순한 억울함이 아니라, 다시 한 번 복음의 본질을 붙드는 거룩한 간증이 되도록. 또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에게도 동일한 질문이 주어진다. 혹시 우리 또한 자유를 누리는 환경 속에서 오히려 말씀의 능력을 잃고 있지는 않은가? 복음은 설교문에만 갇혀 있는 글자가 아니다. 검열받을수록 더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힘이며, 통제당할수록 더 멀리 퍼져나가는 불꽃이다.

르완다의 교회가 닫히는 지금, 하나님은 그 안에서 새로운 길을 내고 계신다. 교회는 언제나 가장 어두운 시기에 가장 밝은 빛을 발해 왔고, 성령은 결박당한 제자들을 통해 오히려 세계 선교의 문을 열어 오셨다. 닫힌 문은 끝이 아니다. 오히려 그 문틈 사이로 스며드는 빛을 통해 하나님은 세상을 새롭게 비추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