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선교의 땅 중에서도 가장 굳게 닫힌 땅으로 자주 불린다. 1549년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가고시마에 도착했을 때, 복음은 불길처럼 번졌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온 박해와 금교령은 교회를 지하로 몰아넣었다. 수 세기 동안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신앙을 숨기며 살아온 ‘가쿠레 기리시탄’(숨은 그리스도인)의 이야기는 오늘날 일본 선교가 지닌 본질을 보여 준다. 복음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땅속에서 씨앗처럼 살아남아 다시 싹을 틔운다.


현재 일본의 기독교인은 전체 인구의 0.2% 남짓이다. 교회마다 고령화의 그림자가 짙고, 젊은 세대의 발길은 점점 멀어진다. 겉으로 보기엔 선교의 희망이 거의 없는 듯 보인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작은 겨자씨가 큰 나무로 자란다고 말한다. 일본 교회의 현실은 결코 절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준비하시는 기다림의 과정일지도 모른다.

일본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종교에 대한 무관심이다. 불교와 신토는 문화의 일부로 남아 있지만, 많은 이들에게 종교는 삶의 의미와는 동떨어진 존재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로 그 공허함 속에 복음의 자리가 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인간은 결국 영적인 갈망을 외면할 수 없다.

일본 선교의 길은 빠르지 않다. 강한 주장이나 논리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대신 묵묵히 곁에 서서 삶으로 신뢰를 쌓아가는 관계 중심의 접근이 필요하다. 강요하지 않고, 묻고, 기다리며, 함께 걸어가는 선교—이것이 일본 땅에서 열매 맺을 방식이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라는 단순한 질문 하나가, 굳게 닫힌 마음에 작은 금을 낼 수 있다.

또한 일본 문화 자체는 선교의 자원이 될 수 있다. ‘와비사비’의 미학 속에 담긴 불완전함과 덧없음은 오히려 복음의 완전함과 영원함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전통 예술, 문학, 공동체 정신 속에서 ‘용서’와 ‘회복’이라는 성경적 주제를 연결할 때, 일본인들은 낯설지 않게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

일본 선교는 단기적 성과가 아닌 긴 호흡의 사명이다. 누군가는 뿌리고, 또 누군가는 물을 주며,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신다.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 우리의 충성과 기다림이다. 어쩌면 지금 일본은 거대한 추수를 준비하는 조용한 새벽일지도 모른다.

오늘 우리는 이 질문을 품어야 한다. “나는 일본을 위해 얼마나 오래 기다릴 수 있는가? 나는 작은 씨앗 하나라도 심을 수 있는가?” 그 질문 앞에 선 선교사와 교회는 결국 답하게 될 것이다. 일본 선교는 끝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지금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