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온 마을을 불태우고, 노인을 쓰러뜨리고, 교회를 무너뜨렸다. 하지만 믿음은 꺾이지 않았다.”
이 한 문장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마주한 가장 참혹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다. 2025년 6월 초, 나이지리아 베누에(Benue) 주에서 또다시 피의 비극이 일어났다. 무장한 풀라니(Fulani) 유목민 집단이 기독교 마을을 공격해 최소 86명이 목숨을 잃었다. 총과 칼, 그리고 불을 들고 찾아온 그들은 집과 교회를 짓밟았고, 공동체 전체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 사건이 더 두려운 이유는, 이런 광경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희생자 가운데는 70세의 고령 목사도 있었다. 그는 도망가지 않았다. 교회에 남아, 무너지는 벽 아래에서 성경을 펼쳐둔 채 앉아 있었다. 그의 시신은 그 자리에서 발견됐다. 이 장면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순교가 실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며, 우리에게 신앙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게 만든다.
끝나지 않은 박해, 반복되는 외침
이건 종족 간의 단순한 충돌이나 지역 분쟁으로 치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이지리아 중부 벨트 지역에서는 수년째 기독교 농민 공동체와 풀라니 유목민들 사이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 갈등은 종교 박해의 성격을 띠며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교회만 노려 불태우고, 예배자들을 집중적으로 살해하는 공격 방식은 우연이 아닌 명확한 신호다. 조직적인 기독교 박해라는 것이다.
특히 이번 학살은 규모나 방식에서 이전을 넘어섰다. 어린아이부터 노인, 여성까지 가리지 않고 희생됐다. 불에 타버린 마을은 흔적조차 남지 않았고, 생존자들은 불안에 떨며 폐허를 떠돌고 있다. 더욱 충격적인 건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나이지리아 정부도, 국제사회도 거의 아무 반응이 없다는 사실이다. 전쟁도 아닌 평화시기에, 한 마을의 공동체가 통째로 사라졌는데도 세상은 조용하다.
무너진 정의, 침묵하는 세계
베누에 주의 교회협의회는 즉각 정부에 비상 군사 개입을 요청했다. “더 이상 기도만 하며 죽음을 기다릴 수 없다”는 외침은 절박함을 넘어 절규였다. 하지만 정부는 공식 성명도 내지 않았고, 군 병력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있다. 몇몇 교회 지도자들은 정부가 아예 방조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서구 언론도 이 사건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인권 단체들의 반응도 미온적이다. 이건 단지 아프리카의 한 지역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전 세계 기독교 공동체가 마주한 현실이며, 동시에 도전이다. 교회가 타오르고, 성도가 죽어가고 있는데, 그 사실을 외면하는 건 결국 우리 모두의 책임이 된다.
불탄 교회 위에 다시 선 예배자들
그런데도 희망은 남아 있다. 폐허가 된 예배당 위에 청년들이 모여들었다. 벽돌을 다시 쌓고, 지붕을 다시 올리고, 찬양을 다시 불렀다. 어머니들은 자식을 잃고도 “하나님은 선하시다”고 고백했다. 그 말은 슬픔을 뛰어넘은 신앙 고백이었고, 오히려 이웃을 위로하는 힘이 되었다.
70세 순교한 목사의 죽음은 끝이 아니다. 그는 복음을 위해 살았고, 복음 위에 죽었다. 그의 피는 땅에 떨어졌지만, 그냥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씨앗이 되었고, 언젠가 다시 믿음의 숲이 되어 자라날 것이다.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는 응답해야 한다
이 사건은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지만, 그 자유 속에서 과연 복음을 얼마나 붙들고 살아가고 있을까? 혹시 기독교를 문화처럼 소비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이제는 말뿐인 연대가 아니라, 실제적인 응답이 필요하다. 나이지리아를 위한 기도, 물질적 후원, 그리고 무엇보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삶. 이것이 우리가 순교자들의 피 앞에 설 수 있는 최소한의 책임이다.
순교는 죽음이 아니라, 하늘의 외침이다
요한계시록은 이렇게 말한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베누에에서 순교한 그들은 분명 그 면류관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외침은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이렇게 들려온다. “우리를 잊지 말라. 이 믿음을 너희도 지켜라.” 이제는 우리의 차례다. 응답하자. 기도로, 행동으로, 삶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