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honey] 별☆ 볼일 많은 영양
청정 자연 속 즐길 거리 산재한 '숨은 보석'
(영양=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경북 영양군은 봉화, 청송군과 함께 머리글자를 따 일명 '비와이씨'(BYC)로 불리는 경북 대표 오지다.
영양은 그 어느 곳보다 청정한 자연환경 등 매력적인 관광 자원이 많은 고장이다.
이 관광 자원의 가치를 인정하고 개발 발전시키려는 민관의 노력도 많은 결실을 거두고 있다.
◇ 숨겨 놓은 보석 같은 청정지역
이곳은 우선 교통이 불편해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그러나 한번 가보면 흠뻑 빠질 매력이 가득하다.
우선 산과 계곡이 무척이나 깊다.
경북 영양군 밤하늘·반딧불이공원은 지난 8월 환경부가 매달 선정하는 '이달의 생태관광지'에 선정됐다.
영양밤하늘·반딧불이공원은 2018년 환경부가 지정한 생태관광지역이다.
왕피천 유역 생태경관보전지역, 영양국제밤하늘보호공원을 포함하는 지역으로, 청정하기로 이름난 왕피천의 최상류 지역이다.
어디 숲이 우거진 곳이 한두 군데겠는가만 이곳처럼 다양한 색상의 바다에 흠뻑 빠진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은 많지 않다.
어떤 곳에는 짙푸른 녹음이 있지만, 또 다른 곳에는 마치 늦가을처럼 붉게 물든 숲이 보인다.
일월산(해발 1,219m) 자락에 조성된 자생화공원 주위에는 단풍나무 군락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수비면의 자연은 청정하고 아름답다.
먼저 캠핑장을 찾았다.
최근 한국관광공사로부터 가능성을 인정받아 '관광두레' 사업 대상자로 선정된 캠핑장이다.
캠핑장 옆 맑은 계곡물에서는 캠퍼들이 뒤늦은 물장난에 열심이다.
계곡물 위에 야전침대를 설치해 두고 누워있는 장면은 한없이 시원해 보였다.
이곳은 '오지 은하수 별빛 샤워' 프로그램으로 관광공사로부터 다양한 지원사업을 받게 됐다.
야간에 별빛 가득한 수비면 일대를 돌아보는 프로그램이다.
경북문화관광공사가 선정한 가족친화 우수캠핑장에도 이름을 올렸다.
◇ 청정 오지에 빛나는 별
수비면 일대는 인가가 드물고 불빛도 거의 없는 곳이다.
내세울 것은 밤하늘에 빛나는 별이다.
주민들은 이곳의 별빛을 테마로 콘텐츠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국제밤하늘협회는 2015년 영양군 수비면 왕피천 생태경관보전지구 390여만㎡를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국제밤하늘보호공원으로 지정했다.
이곳의 '영양 밤하늘·반딧불이 공원'은 지난 5월 환경부의 생태관광지역으로 재지정되기도 했다.
생태관광지역은 환경 측면에서 보전 가치가 있고, 생태계 보호의 중요성을 체험·교육할 수 있는 지역으로 환경부가 현장·서면 평가를 해 지정하고, 3년마다 운영평가를 거쳐 재지정한다.
이곳의 반딧불이천문대는 특히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평일 밤이었지만 수많은 차량이 천문대 앞에 정차해 있었다.
깊고 깊은 오지마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린 이유는 뭘까.
바로 별을 관람하기 위해서다.
대한민국 최고의 오지라는 이유로 별 관측에 방해가 되는 인공 불빛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천문대 관람 인원이 많기 때문에 예약제로 운영한다.
정해진 시간에 입장한 뒤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이후 돔 천장이 열리자 감탄사가 쏟아졌다.
밤하늘의 별이 어둠에 익숙해진 관람객들의 눈동자로 쏟아져 들어왔다.
천문대 관계자는 "인공위성에서 보면 이곳이 한국에서 제일 어둡고 광공해가 없는 곳"이라면서 "그만큼 별 보는 데 더 용이하며, 멀리서 온 만큼 더 값진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시인 조지훈의 발자취 찾을 수 있는 주실마을
한양 조씨 집성촌인 주실마을은 청록파 시인이자 국문학자 조지훈(1920∼1968)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조지훈의 문학 세계와 발자취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조지훈 문학관과 조지훈의 생가 등이 잘 가꿔져 있다.
문학관에는 시인이 소년 시절 즐겨 읽었던 책을 비롯해 시인이 사용했던 가방과 가죽 장갑, 문갑, 파이프, 안경 등 유품이 전시돼 있다.
조지훈의 생가인 호은종택(壺隱宗宅)은 들어서는 순간부터 눈이 시원해진다.
마을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이 가옥에서는 산봉우리가 붓끝과 같이 생겼다고 해서 '문필봉'이라는 이름을 얻은 봉우리가 바라다보인다.
한눈에 명당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바로 앞에는 짙은 분홍색의 배롱나무꽃들이 만발해 있다.
아무도 없는 고택 마루에 앉아 풍경을 감상하다 보니 마음이 절로 평온해진다.
호은종택 왼편으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면 언덕배기에 잘 정비된 정원이 하나 나오는데, 이곳은 개인이 가꾼 정원이라고 한다.
개인이 가꾸기에는 그 정성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간 듯 보인다.
주인장이 흔쾌히 구경하고 가라고 해서 이곳저곳을 살펴봤다.
무엇보다 골프장을 연상시킬 만큼 잘 가꿔진 잔디밭과 제철 꽃들이 만개해 있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이 동네에서 며칠 머물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앞에는 작은 게스트하우스도 최근 문을 열었다.
◇ 내륙에서 찾은 전통의 맛
내륙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영양에는 최초 한글 조리서인 '음식디미방'이 전해져 내려온다.
음식디미방은 조선 후기 유학자인 석계 이시명 선생의 부인 장계향(1598∼1680년) 선생이 350여년 전인 1670년께 자손을 위해 지은 한글본 음식 조리서다.
영양군 두들마을 재령 이씨 종가에 내려오고 있다.
이 조리서에는 국수, 만두, 술 등을 비롯해 예로부터 내려오거나 장 선생이 개발한 음식(146가지) 조리법, 조리기구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디미방의 후예답게 영양에는 맛집이 많다.
그중 한 곳을 찾았다.
오리 불고기가 대표메뉴인 가게다.
홀에는 한식 뷔페가 차려져 있는데, 거의 모든 재료가 주인이 직접 밭에서 기르는 채소들로 마련됐다.
오리 불고기는 노루 버섯과 부추 등 다양한 식재료가 특유의 비법 양념장과 잘 어울렸다.
함께 나온 고추는 정말 특별했다.
통통했지만 전혀 맵지 않고 아삭아삭한 이 고추는 국내 관광객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잘 어울릴 듯싶었다.
역시 고추의 고장답게 고추의 종류가 다양하고 품질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 가장 오래된 막걸리 양조장
한동안 고급 막걸리 붐이 일었다.
그래서 '막걸리계의 롤스로이스'니 '막걸리계의 돔 페리뇽' 등의 별명을 붙은 고급 막걸리들이 시장에서 소비됐다.
그런데 이번 일정 가운데 영양 읍내에서 100년 이상 된 양조장을 발견했다.
그 어느 곳에서도 홍보가 되지 않았던 양조장이었기에 오지에서 보물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모두 6개 지역 농가가 힘을 합해 만든 '영양군 꽃차 사회적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소풍'이라는 이름의 양조장이었다.
조합 운영으로 창출되는 수익으로 지역 내 청년과 사회 취약계층에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복지 제공을 목표로 운영되고 있다.
잘 정비된 목조 양조장 건물은 그 자체가 아름다웠다.
양조장 벽면에는 양조장의 역사와 개발 스토리들이 잘 소개돼 있다.
영양군의 도시재생 뉴딜사업 중 핵심 콘텐츠로 손꼽히는 이 사업은 2019년 '영양을 빚은 양조장 조성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영양 양조장의 원형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건물을 리모델링해 내부에 막걸리 생산시설과 전시 공간, 청년창업 공간 등을 조성했다.
영양 양조장의 복원은 지역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의미와 함께 외씨버선길 중간지점의 중요한 관광자원이 되고 있었다.
막걸리가 들어간 막걸리타르트와 막걸리 슬러시 음료를 주문했는데 무척 풍부한 맛이다.
운전해야 했기에 막걸리를 마시지 못하는 것이 무척 아쉬웠다.
경쾌한 느낌의 6도짜리 막걸리와 걸쭉한 느낌의 8도짜리 막걸리가 팔리고 있었다.
◇ 죽파리 자작나무 숲
영양군 수비면에서 최근 알음알음 알려지기 시작한 비경이 있다. 수비면 죽파리 자작나무숲이다.
몇 년 사이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강원도 인제군 원대리 자작나무숲에 비하면 이곳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곳이 훨씬 더 매력적일 수 있다.
죽파리는 면적이 축구장 40개에 해당하는 30.6㏊에 달하며, 수령 30년생 자작나무 약 12만 그루가 자라고 있다.
인제 자작나무숲보다 3배나 넓은, 국내 최대 규모다.
죽파리 자작나무숲은 산림청이 1993년부터 죽파리 검마산 일대에 조성하기 시작한 숲이다.
최근에는 이곳에 전기로 움직이는 셔틀버스가 도입됐다.
아래쪽 쉼터에서 시작해 자작나무숲 앞까지 가는 코스다.
수년 전 자동차를 끌고 올라갔던 것과 비교하면 훨씬 선진화된 느낌이다.
한참을 올라가는데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중장년 라이더가 오르막을 힘겹게 산악자전거(MTB)를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이 더위에 대단하다' 싶었다.
맑게 흐르는 시냇물에 온몸에 난 땀을 씻어내고 싶다.
계곡물에 풍덩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죽파리 자작나무숲으로 향하는 길에는 야트막한 계곡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그러나 주민들의 식수원으로 사용되기에 계곡물에 발 담그는 것조차 금지돼 있다.
어느 모퉁이를 돌아서니 하얀 껍질을 가진 나무 군락이 눈에 확 들어온다.
휴일 오후였지만 방문자는 많지 않았다.
이 넓은 자작나무 숲이 온전히 나 하나만을 위한 정원이 된 듯한 느낌이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초기에 이곳을 다녀온 것이 행복했다.
최근 영양 지역을 별로 볼 것이 없는 곳으로 깎아내리는 유튜버의 발언이 논란을 낳은 적이 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그의 저서에서 유명한 글을 남겼다.
'인간은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는 문장이다.
줄여서 '아는 만큼 보인다'로 통용되기도 한다.
비하 논란을 접하고는 유 청장의 글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게 됐다.
영양군은 알고 보면 숨겨놓은 보석 같은 곳이다.
그저 멀고 잘 모르는 곳이라는 것은 서울 중심 사고일 뿐이다.
남들이 보지 못한 영양의 매력
입구에서부터 1시간여가량 걷거나 전기자동차를 타고 20여분 올라가다 보면 오른편으로 끝없이 이어진 얕은 계곡이 청량감을 준다.
자작나무 숲에는 바람이 무척이나 시원하다.
숲 인근이 계곡이라 그런 듯하다.
숲을 30여분 거닐다 내려왔다.
쉼터에는 좀 전에 봤던 라이더가 쉬고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가 막걸리 한 잔을 권한다.
막걸리가 무척이나 깔끔한 맛을 냈다.
더 깊은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가 치킨 프랜차이즈 회사의 창업주인 권원강 교촌 그룹 회장임을 알게 됐다.
그는 수년 전 영양군을 방문했다가 100년 전통을 가진 막걸리 양조장이 버려져 있던 것을 발견하고 지역 농가들과 협업해 읍내의 그 양조장을 열게 됐다고 한다.
필자는 읍내의 양조장 하나만으로도 서울에서 관광객이 쇄도할 만큼 앞으로 큰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앞으로 막걸리 공장을 증설하는가 하면 지역 농가들과 협업해 앞으로 고추를 테마로 한 세계적인 소스를 개발할 예정이라고 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진리인 듯싶었다.
영양군에서 권 회장은 어떤 가능성을 엿보았을까?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4년 9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polpor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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