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발해가 변방 정권?…'사상적 무기' 더한 中 역사 왜곡
'중화민족 공동체' 설명하며 고구려 예시로…"주변국, 위계적 관계로 봐"
"학술적으로도 난센스"…학계, 이론 체계·대응 연구 필요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최근 중국 당국이 대학 교재에서 고구려 역사를 중국의 '변방' 역사로 서술한 것을 두고 역사 왜곡이 교묘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수 민족까지 하나로 보는 이른바 '중화민족 공동체' 의식에 사상적 근거를 둔 이런 움직임이 이어지지 않도록 적극적인 대응과 연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논란이 된 교재는 올해 3월 보급한 '중화민족 공동체 개론'(이하 개론)이다.
중국 내 소수민족 관련 정책이나 문제를 관할하는 국가민족사무위원회가 주축이 돼 2021년부터 집필진을 꾸렸으며 지난해 말 최종 발간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론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중화민족 공동체가 형성돼 온 과정을 설명하는 게 골자다.
중화민족 공동체는 주류 민족인 한족과 소수민족까지 모두 포함해 각 민족이 교류·동화를 거쳐 하나로 융합한 실체를 일컫는다. 중국 당국이 보는 민족 정책의 지향점과도 같다.
총 377쪽 분량의 개론 곳곳에는 고구려와 관련한 서술이 나오는데, 중화민족 공동체라는 관점에서 '변방 정권'으로 치부하고 중국 역사에 귀속시키려는 듯한 표현이 다수 발견된다.
예컨대 개론은 "(당나라 시기) 동북방에는 고구려, 발해 등 변방 정권이 연속해 있었다"며 "그들은 모두 한문·한자를 썼고 역대 중앙(중국) 왕조의 책봉을 받았다"고 서술하고 있다.
또 "중원과 동북 각 족군(族群) 문화의 영향을 받아 고구려의 세력이 장대해졌다"라거나 "고구려 고분 벽화에 선명한 중화문화의 각인이 다수 남아있다"고 적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중화민족 공동체 의식이 투영된 개론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국 전문가는 "(당국 차원에서) 굉장한 공력을 기울여 만든 자료"라며 민족 융합이라는 관점에서 고구려와 발해 역사를 교묘하게 다룬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고구려사 전문가인 임기환 서울교대 명예교수는 "기존의 동북공정은 중국 영토 안에 있는 역사를 편입하는 식이었다면, 이제는 문명론을 내세우는 방식으로 진화했다"고 비판했다.
임 교수는 "고구려와 발해 역사를 직접적으로 타깃(target·목표)한 게 아니라 중화민족 공동체의 동북 지역 사례로서 언급하고 있다"며 "자칫 대응이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 근현대사 전공자인 오병수 동국대 연구교수는 "중국이 정체성을 표현하는 역사 서술 방식을 보면 보통 국가가 아닌 제국 또는 대국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짚었다.
오 교수는 "(중화민족 공동체의) 문명이나 문화를 근거로 주변국을 위계적 관계로 파악하는 게 핵심"이라며 중화민족 중심의 시각이 특히 우려스럽다는 의견을 냈다.
중국사 전문가인 김정열 숭실대 교수는 고대부터 중화민족 공동체가 형성돼 현재까지 확대·발전해왔다는 논리와 관련해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 많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예를 들어 신석기 시대는 국가나 민족을 제대로 구분하기 어렵다"며 "이를 공동 문화권 혹은 상호 공동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은 학술적으로도 난센스"라고 지적했다.
역사 왜곡이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대응과 연구가 필수라는 게 학계 중론이다.
손장훈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지난해 4월 재단에서 펴낸 '동북아역사 리포트'에서 "'중화민족 공동체는 역사 속에 단단히 뿌리내린 위협적인 개념이며 중국의 사상적 무기"라고 지적하며 앞으로의 행보를 주목해야 한다고 한 바 있다.
오 교수는 "2010년대 이후 중국에서 민족을 이용한 정치가 이뤄지는 점에는 주목하지만, 구체적인 이론 체계나 시진핑(習近平) 체제의 정책 등은 향후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yes@yna.co.kr
저작권자 ⓒ 위클리 리더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