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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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리더십을 세우는 코치
안녕하세요. 오늘은 북미를 기반으로 전세계에 걸쳐서 ‘리더십 디자인’ 사역을 하고 있는 탁월한 전문가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캐나다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피터정 코치를 만나서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래처럼 다양한 그의 활동과 미래의 계획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Q. 캐나다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고 계시는데, 코칭을 언제 접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A. 제가 전문적으로 ‘코칭’을 전공하게 된 것은…

북미 창조 사역자를 만나다
현재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한국에 창조의 증거를 찾아 바쁘게 그 위대함을 전하고 계시는 박창성 선교사를 만나 보았습니다. 현재도 활발하게 활동하시면서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알리고 많은 이들이 깨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증거를 전하는 일을 하고 있십니다. Q. 선교사님, 안녕하세요. 오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선교사님의 독특한 사역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A. 네, 반갑습니다. 저는 미국 시애틀을…

플랫폼 선교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오늘은 선교 플렛폼을 만들어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많은 선교사들을 한 곳에 모으고 그 플렛폼을 이용하여 새로운 선교적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브링업 인터네셔널의 신승철 대표를 만나보았습니다. 그 분과의 다양한 인터뷰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Q. 안녕하세요. 브링업 인터내셔널에 대해 자세히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A. 브링업 인터내셔널은 2014년 발기인 총회로 시작 되어 설립된 한국의 사단법인이자 국제 NGO 단체입니다. 우리는 ‘선교…

서북미를 깨우는 기도의 용사
현재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에는 밴쿠버라는 낭만의 도시가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좋은 관광지로 보이지만 이곳에서의 영적인 싸움을 치열할 정도이다. 이 도시에서 후배 목회자 및 선교사와 더불어 서북미 영적 사역을 진행하고 있는 남상국 목회자를 오늘 만났습니다. 밴쿠버를 깨우는 사역의 주인공, 남상국 목사 Q. 남상국 목사님, 밴쿠버에서의 사역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들려주시겠습니까? A. (깊은 숨을 들이쉬며) 뉴웨스트민스터의…

탁월한 인생 스토리텔러, 윤수영 코치를 만나다
Q. 윤수영 코치님, 안녕하세요. 오늘 이렇게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에버코칭연구소 대표이자 GCLA 국제단체의 수석코치로서 바쁘신 중에도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코치님의 이야기가 많은 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큽니다. A. 안녕하세요. 저야말로 이런 귀중한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경험과 비전을 나눌 수 있어 정말 기쁩니다. 우리의 대화가 누군가에게…

치유의 희망을 심는다, 송정현 원장
오늘은 치유 사역을 통하여 전 셰계의 곳곳을 방문하며, 선교사를 비롯하여 현지인들을 치유하면서 아직 복음을 전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살아서 역사하는 하늘의 복음을 전하고 있는 치유 사역사인 송정현 원장님을 인터뷰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요즘에는 복음사역자들과 더불어서 함께 선교지를 방문하면서 연합 사역을 하며 복음의 현장을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는데, 지난 달캐나다 사역을 마치고 돌아 온 그분의 사역과 기도 제목을 듣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Q. 안녕하세요. 언제부터 선교에 대한 계획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그 때가 약 2014년 초 쯤이었어요. 아내와 지인의 여러 차례 권유로 선교훈련 캠프에 참여할 때였습니다. 그때 저는 마흔 중반이었고 내면의 죄와 싸우며 거의 죽음의 고통과도 같은 시기를 지나고 있어서, 마음이 무너질 때마다 오직 성경을 정독하는 시간만이 저를 평안하게 했었습니다. 그 평안이 내 유일한 숨통이었죠. 그런 저에게 ‘선교’라는 새로운 세상이 열렸습니다. 평소엔 제 삶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생각했고, 그럴 자격조차 없다고여겼지요. 그래서 선교 훈련을 받자는 제안을 몇 번이나 거절했지만, 결국 말씀으로 설득하는 사람들과 아내의 기도가 저를 움직인 듯 합니다. 그렇게 선교 훈련 프로그램에 발을 들여 놓았습니다. 훈련의 마지막 미션은 한 열방을 정한 뒤 직접 선교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었죠. 성경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저의 마음이 이스라엘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공존하는 그 땅이 저의 삶의 변환점이 되었습니다. Q. 그러면 본래 사회에서는 어느 분야에서 활동을하고 계셨는지요? 저는 20대 초반부터 오랫동안 교육계 현장을 누벼온 사람입니다.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데 익숙했죠. 이후 의료분야 계통에서 근무를 했을 당시에는 늘 제 몸의 통증과 함께 살아왔기에 스스로 통증을 다루는 방법도 터득해 왔구요. 그런데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두 가지 일들이 이후의 선교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는 가장 큰 도구가 될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어느 선교지에서 3~4명이 한 팀이 되어 복음 전도를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낯선 이들을 만나면 저는 아주 자연스럽게 대화의 문을 열곤 했습니다. 게다가 대부분 그들의 집까지 방문해 오랜 통증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테이핑이나 간단한 마사지로 돕곤 했습니다. 이러한 방법들은 그들에게 복음을 나눌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통로가 되었지요. 치유와 섬김이 복음을 향한 문을 열어주었고, 저는 그때 처음으로 하나님께서 내 평생의 경험까지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Q. 많은 선교지를 방문하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선교 현장이 있다면요? 1년 전, C국에서 만난 중년의 여성들을 기억합니다. 10여 년 전부터 알고 지내던 현지 사역자를 통해 알게 된 이들이었죠. 처음에는 복음을 나누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단순한 인사 정도만 주고 받게 된 사람들이었어요. 그 중 한 중년 부인이 수술 후 통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에게 치료를 제안하자, 기꺼이 찾아왔었습니다. 몇 시간의 치료가 끝난 후 그녀는 엄청나게 고마워했고, 며칠 뒤 친구를 데리고 다시 찾아왔었습니다. 그렇게 치료의 시간을 이어가며 복음을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들의 반응은 아주 냉담했었습니다. 한 사람은 무표정하게 불쾌함을 드러냈고, 다른 이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강하게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긴 치료의 시간을 보내자 그들의 마음도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세 번째 만남에서 저는 담대히 말했습니다. “당신의 몸이 좋아진 것은 내가 아니라 예수님이 고치신 것이라고 이야기 했지요.나는 그분의 이름으로 당신을 섬겼을 뿐입니다.”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그가 미소를 지으며, “예수님께 감사드립니다.”라고 입술로 고백하길래 너무나도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그 한 마디가 제 안에 남아 깊은 울림으로 아직까지도 남아있습니다. 복음을 거부하던 사람조차 ‘경험된 사랑’ 앞에서는 마음의 문을 연다는 사실을 경험했던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날이후 저는 복음의 힘을 다시 믿게 되었습니다. Q. 요즘에는 어떻게 사역을 진행하고 있는지요? 이번엔 현지인의 초대로 차를 타고 4~5시간을 달려 그의 고향을 방문한 적이 있었어요. 그곳에서 아침 9시부터 자정까지 이어진 치료로 몸은 지쳤지만, 그 땅에서 일어나는 치유의 일들로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함께 있던현지인이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를 믿겠다고 고백하는 순간,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의 고백은 선교의 보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의 증거였기 때문에 더욱 기뻤던 순간이었습니다. Q. 선교사역의 전과 후를 비교하면 어떠한 변화가 있나요? 복음을 전하기 전과 지금의 나는 분명히 달라진 것 같습니다. 예전엔 제 자신만을 위해 살았다면, 지금은 하나님께 헌신하며다른 이들을 세워주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거든요. 누군가가 필요할 때, 저의 경험과 재능이 그들을 돕는 도구가 된다는 사실이감사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사역 속에 함께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제게는 새로운 기쁨이 되었습니다. 여러 나라를 오가며 선교지를 다니다 보면, 늘 같은 기도가 입술에 맴돌곤 합니다.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꾼이 적으니, 주님 일꾼을 보내주소서.” 저는 이제 그 말의 무게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몇 달 전에 필리핀을 다녀 온 적이 있었습니다. 같이 팀으로 움직이는 이들과 함께 했는데, 복음전도와 훈련 그리고 치유를 통해서 은혜를 전하고 또한 동일한 큰 은혜를 받으면서 함께 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은혜의 시간들을 경험하면서, 앞으로 계속 선교사역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좀 더 세심한 계획과 영적 통찰력이 더해져야 함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Q. 앞으로의 기도 제목이 있다면요? 선교지를 방문할 때마다 늘 느끼는 것이 있는데,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아무런 장벽 없이 전세계로 나아갈 수있는 한국 교회의 현실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깨닫곤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을 외면하는 일부 교회들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기도 합니다. 우리 안에 쌓인 벽들이 그분의 손길을 막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소망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처럼 “Be on your guard, and stay awake.” — 깨어 있으라. 이 말씀이 한국 교회 안에, 그리고 우리의 마음 안에 다시울려 퍼지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이것이 저의 유일한 기도 제목입니다. 오늘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송원장님의 선교 사역에 주님의 큰 은혜가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같이 동행하시는 분들과의 사역을 위해서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앞으로 다시 기사로 만나뵐 것을 기대하면서 오늘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치유과복음이 함께하는 이 멋진 사역에 주님의 놀라운 계획과 발걸음이 함께 하실 것을 믿습니다. 감사드리고 후에 또 뵙겠습니다.

오만의 사막에서
뜨거운 사막과 척박한 영혼의 땅 오만. 그곳에서 오늘도 이름 없는 이들을 향해 묵묵히 사랑을 흘려보내는 선교사가 있다. 태권도 도장에서,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그들의 정체성과 존재 가치를 회복시키는 일. 기적 같고 드라마틱한 변화들이 그곳에서 조용히 일어나고 있었다. 이번 인터뷰는 오만에서 사역을 마치고 제2의 사역지로 옮길 준비를 하는 <조갈렙 선교사>의 긴 여정을 따라가며, 선교가 무엇인지, 예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깊이 묵상해보는 시간이다. 그의 사역 스토리와 하늘을 향한 열정을 아래에 나누고자 한다. Q. 선교사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역자로서의 부르심이 유년시절에 결정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특별한계기가 있었을까요? A. 제 인생의 첫 콜링은 초등학생 시절인 것 같습니다. 그때의 한국교회는 부흥회의 열기로 가득했지요. 담임목사님의 정중한 설교와는 또 다른 열정적인 부흥강사님들의 메시지를 사모하며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흥회 강사님께서 “이 자리에서 목회자가 될 사람 손들어 보세요!”라고 외치셨습니다. 저도 모르게 손이 번쩍 들렸고, 강대상에 올라가축복기도를 받았던 그 순간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날 이후 제 마음속엔 목회자의 꿈이 자라기 시작했죠. Q. 그 이후의 유년 시절 신앙생활이 궁금합니다. A. 제 신앙의 뿌리는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 있었던 강남교회입니다. 수요예배, 철야예배, 새벽기도까지 빠지지 않고 참석했습니다. 어머니를 따라 새벽에 교회로 향하던 기억도 참 따뜻하죠. 하지만 고3 때, 하나님과 교회를 잠시 떠나 세상의 자유를 맛보며 방황했습니다. 그때 아버지께서 간경화로 고통받으시며 가족 모두가 절망의 시간을 보냈고, 하나님은 그 고통을 통해 제마음을 다시 부르셨습니다. Q. 제가 알기로는 대학 전공이 경제학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신학을 다시 선택하게 되셨는지요? A. 고3이 되던 해, 개척교회 목사님의 어려운 삶을 지켜보며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나는 신앙 좋은 장로가 되어 후원자가 되자’는 생각이 들어 결국 경제학과에 진학했습니다. 하지만 대학생활과 군복무, 그리고 가정에 찾아온 위기 속에서 다시금 하나님 앞에 무릎 꿇게 되었습니다. 결국 담임목사님의 조언대로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신학대학원에 입학했고, 다시 목회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죠. Q. 그럼 선교의 부르심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요? A. 대학 졸업 후 신대원 입학 전, 당시 성결대학교 신학과에 재학 중이던 아내의 권유로 말레이시아 단기선교를 가게 됐습니다. 동말레이시아 이반족의 산속 마을에서 예배하던 중, 말도 통하지 않는 아이가 눈물 흘리는 이유를 성령께서 깨닫게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교회를 반대해서였죠. 그 순간, 예수님께서 제 곁에서 함께 우시며 말씀하시는 듯했습니다. “선교사는 이런 삶이구나”라는 마음이 들었고, 그날 저는 선교사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습니다. Q. 말레이시아에서의 그 결단 이후 곧바로 선교지로 나가셨나요? A. 아닙니다. 오히려 그 이후 전도사, 강도사, 부목사로서 한국 목회에 전념했죠. 그러나 익산 신황등교회 사택에서 자녀들이곰팡이로 자주 병에 걸리자 아내가 기도 중 이런 고백을 드렸다고 합니다. “아버지, 한국에서 목회 잘 할 테니 선교지 안 가면 안 되나요?” 그때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연옥아, 네 자식들이 아프니 마음이 아프지? 그런데 내 자식들도 죽어간다.” 그 말 앞에 우리 부부는 아무 말도 못하고 오랫동안 울었습니다. 그 일이 다시 선교의 불을 지폈습니다. Q. 하나님께서 사모님을 통해서 말씀을 하셨군요. 그럼 그 후로는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요? A. 그 이후로 저와 아내는 오랫동안 또 깊은 기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선교사의 길을 가기로 다시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선교를 나가려고 하니 아무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서 선교훈련을 받고 나가기로 결정하고 알아보던 중 아내에게 하나님이 ‘바울선교회’ 라고 정확하게 말씀해 주셔서 바울 선교회를 통해 선교 훈련을 받고 선교지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Q. 너무 감동입니다. 혹시 선교지에서 겪은 많은 사역들 중에 기억에 가장 남는 일이 있다면 어떠한 것이 있는지요? A.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제가 장애인 태권도 사역을 시작하게 인도해준 메이사와의 만남이었습니다. 저는 저희 가족을 소개할 때 오만의 사슴가족이라고 합니다. 사슴은 경청을 대표하는 동물입니다. 귀가 360도 돌아가는 귀가 엄청 예민한 동물이라서 소리를 잘 듣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냥꾼이 평상시에는 잡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슴이 먹이에 마음이 빼앗겼을때나 짝찍기 기간에 집중력이 흩어져서 사냥 당한다고 합니다. 저희가 오만을 소개할 때 오직 주님만의 약자 오만 이렇게 소개합니다. 한국분들이 오만을 잘 모르시기 때문에 기억하기 좋으시라고 이렇게 소개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오만은 한 여름의 온도가 50도가 넘을 정도가 되는 사막의 나라인 것처럼 오직 주님만 바라보지 않으면, 주님께 온전히 집중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영적으로도 매우 척박한 땅입니다. Q. 그럼 선교지에서 오직 주님께 온전히 집중만 하게 되셨겠네요? A. 네, 물론입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게 하신 이 땅은 아랍의 다음 세대들 모두 사랑에 목말라 합니다. 오만의 시골에서는 여성이 15살부터 첫 아기를 낳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평생 8명에서 10명까지 아이를 낳는데 부모로서 준비되지 않은 나이에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다보니 아이들이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하고 거의 방치됩니다. 그래서 제가 태권도를 가르칠 때 또 아내가 종이접기를 가르칠 때 우리는 가장 먼저 아이들의 이름을 부릅니다. 수업 시간이 조금 부족해져도 반드시 맨 처음 아이들 이름을 부릅니다. 아이들이 관심과 사랑에 목말라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Q. 그렇게 사역 하시는 중 혹시 특별한 경험을 하신 적이 있었는지요? A. 학교에서 태권도 교사로 일하게 되었을 때인 듯 합니다. 그 태권도 과목은 정규 과정에 속했었는데, 출석을 부르던 때 다른아이들과는 달리 대답을 못하는 한 아이에게 유독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 이름은 메이사였고 그는 귀신들린 듯한 얼굴로 교실 구석에 앉아 아무 반응도 하지 않던 아이였습니다. 처음엔 저도 감당할 자신이 없어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계속 그 아이를 제 마음에 떠올리게 하셨죠. 마침내 포기하고 두 손 들고 메이사에게 다가가 산책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알라 야하브치(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신다)”라고 속삭였더니, 무표정하던 아이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그 작은 미소 하나로 제 사역의 방향이 다시 정해졌습니다. Q.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그리고 제가 듣기로는 장애인 태권도 사역도 시작했다고 하던데요. A. 맞습니다. 이후 중증 장애 학생들로 구성된 태권도 반을 열게 되었고, 처음엔 혼돈 그 자체였지만, 하나 둘 아이들과 마음이 통해가며 수업은 질서와 웃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 아이들과의 시간은 제가 살아 있는 이유이자, 태권도 사역을 포기하지 않게 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Q. 정말 귀한 결단을 하셨고, 그 결과도 놀랍습니다. 그 이후에는 어떤 일들이 이어졌나요? A. 네, 감사하게도 국경 시골 마을의 작은 사립학교에서 시작된 장애인 태권도 수업은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온라인으로 확장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오만의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장애인 제자들을 만나게 해주셨고, 나아가 레바논의 시리아 난민 MK들, 아프리카 오지에 있는 MK들, 그리고 아랍에미리트에 거주하는 MK들까지 연결해 주셨습니다.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문을 여신 분은 바로 아버지 하나님이셨습니다. Q. 펜데믹이 진행되었을 때는 어떻게 사역이 진행이 되었나요? A. 2019년 11월, 펜데믹이 시작될 무렵 저는 태권도 도장을 열었습니다. 이 도장은 저희 사역의 정체성을 명확히 해준 귀중한공간이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매달 관광 비자를 받기 위해 아랍에미리트 국경을 넘나들어야 했고, 주변 이웃들과도 깊은 교제를 나누기 어려웠습니다. 늘 ‘외국인’이라는 모호한 정체성으로 살아가야 했지요. 그렇게 안정적으로 사역이 정착할 것이라 생각되었는데, 갑자기 펜데믹이 발생하고 모든 것이 변하게 되었습니다. 외부 활동은 금지되고 오로지 온라인으로만 가능한 일들만 허락이 되었습니다. 그 때 캐나다에 본거지를 둔 글로벌코칭리더십(GCLA)의 선교사를 위한 ‘코칭리더십’ 훈련에 참가한 후, 태권도 사역도 마찬가지로 온라인으로 바꾸어야겠다고 결심하고, 모든 태권도 강의를 100% 온라인으로 전환했습니다. 그런던 차에 제 안에서 새로운 비전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습니다. Q. 그 비전이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옵니다. 사역 중에 특히 마음에 남은 이야기가 있다면 나눠주실 수 있을까요?…
글로벌 리더 헤드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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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 시온선교합창단의 Praise in Europe!!
2025년 5월, 밴쿠버 시온선교합창단 140명의 단원들이 영국 런던을 방문하여 감동적인 찬양 사역을 펼쳤다. 거리 복음 전도와 런던에 있는 세계적인 컨서트 홀인 로열 알버트홀(Royal Albert Hall)에서의 연합 찬양, 그리고 유럽 전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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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의 땅, 다시 웨일즈로!
한 사람이 인생을 걸고 순종할 때, 하나님은 그를 통해 시대와 땅을 움직이신다. 모로코의 이슬람권에서부터 영국 웨일즈의 낙후된 교회까지,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기도의 우물을 다시 파는 한 선교사가 있다. 잊혀졌던 부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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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모지가 아닌 선교지로 부르신 하나님!!
멕시코 북서쪽, 바하 캘리포니아 반도의 사막과 먼지바람 속, 누군가는 그곳을 ‘불모지’라고 부르지만 하나님은 그 땅을 ‘선교지’라고 부르셨습니다. 이번에 만난 선교사는 바로 그 땅에서 매일같이 말씀의 씨를 뿌리고, 복음의 나무를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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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의 사막에서
뜨거운 사막과 척박한 영혼의 땅 오만. 그곳에서 오늘도 이름 없는 이들을 향해 묵묵히 사랑을 흘려보내는 선교사가 있다. 태권도 도장에서,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그들의 정체성과 존재 가치를 회복시키는 일. 기적 같고 드라마틱한 변화들이 그곳에서 조용히 일어나고 있었다. 이번 인터뷰는 오만에서 사역을 마치고 제2의 사역지로 옮길 준비를 하는 <조갈렙 선교사>의 긴 여정을 따라가며, 선교가 무엇인지, 예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깊이 묵상해보는 시간이다. 그의 사역 스토리와 하늘을 향한 열정을 아래에 나누고자 한다. Q. 선교사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역자로서의 부르심이 유년시절에 결정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특별한계기가 있었을까요? A. 제 인생의 첫 콜링은 초등학생 시절인 것 같습니다. 그때의 한국교회는 부흥회의 열기로 가득했지요. 담임목사님의 정중한 설교와는 또 다른 열정적인 부흥강사님들의 메시지를 사모하며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흥회 강사님께서 “이 자리에서 목회자가 될 사람 손들어 보세요!”라고 외치셨습니다. 저도 모르게 손이 번쩍 들렸고, 강대상에 올라가축복기도를 받았던 그 순간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날 이후 제 마음속엔 목회자의 꿈이 자라기 시작했죠. Q. 그 이후의 유년 시절 신앙생활이 궁금합니다. A. 제 신앙의 뿌리는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 있었던 강남교회입니다. 수요예배, 철야예배, 새벽기도까지 빠지지 않고 참석했습니다. 어머니를 따라 새벽에 교회로 향하던 기억도 참 따뜻하죠. 하지만 고3 때, 하나님과 교회를 잠시 떠나 세상의 자유를 맛보며 방황했습니다. 그때 아버지께서 간경화로 고통받으시며 가족 모두가 절망의 시간을 보냈고, 하나님은 그 고통을 통해 제마음을 다시 부르셨습니다. Q. 제가 알기로는 대학 전공이 경제학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신학을 다시 선택하게 되셨는지요? A. 고3이 되던 해, 개척교회 목사님의 어려운 삶을 지켜보며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나는 신앙 좋은 장로가 되어 후원자가 되자’는 생각이 들어 결국 경제학과에 진학했습니다. 하지만 대학생활과 군복무, 그리고 가정에 찾아온 위기 속에서 다시금 하나님 앞에 무릎 꿇게 되었습니다. 결국 담임목사님의 조언대로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신학대학원에 입학했고, 다시 목회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죠. Q. 그럼 선교의 부르심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요? A. 대학 졸업 후 신대원 입학 전, 당시 성결대학교 신학과에 재학 중이던 아내의 권유로 말레이시아 단기선교를 가게 됐습니다. 동말레이시아 이반족의 산속 마을에서 예배하던 중, 말도 통하지 않는 아이가 눈물 흘리는 이유를 성령께서 깨닫게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교회를 반대해서였죠. 그 순간, 예수님께서 제 곁에서 함께 우시며 말씀하시는 듯했습니다. “선교사는 이런 삶이구나”라는 마음이 들었고, 그날 저는 선교사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습니다. Q. 말레이시아에서의 그 결단 이후 곧바로 선교지로 나가셨나요? A. 아닙니다. 오히려 그 이후 전도사, 강도사, 부목사로서 한국 목회에 전념했죠. 그러나 익산 신황등교회 사택에서 자녀들이곰팡이로 자주 병에 걸리자 아내가 기도 중 이런 고백을 드렸다고 합니다. “아버지, 한국에서 목회 잘 할 테니 선교지 안 가면 안 되나요?” 그때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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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리더십 in 민다나오
다음세대 리더십 훈련 in 민다나오 2025년 5월 말,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진행된 청소년 리더십 훈련이 현지 교회와 청년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기며 마무리되었다. 이번 훈련은 단순한 단기 집회를 넘어, 다음 세대를 복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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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리더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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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의 사막에서
뜨거운 사막과 척박한 영혼의 땅 오만. 그곳에서 오늘도 이름 없는 이들을 향해 묵묵히 사랑을 흘려보내는 선교사가 있다. 태권도 도장에서,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그들의 정체성과 존재 가치를 회복시키는 일. 기적 같고 드라마틱한 변화들이 그곳에서 조용히 일어나고 있었다. 이번 인터뷰는 오만에서 사역을 마치고 제2의 사역지로 옮길 준비를 하는 <조갈렙 선교사>의 긴 여정을 따라가며, 선교가 무엇인지, 예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깊이 묵상해보는 시간이다. 그의 사역 스토리와 하늘을 향한 열정을 아래에 나누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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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처한 교회와 선교
현 정부가 대한민국 사회를 옥죄어 온 규제의 폭주가 이제는 신앙의 영토를 향해 노골적인 칼을 겨누고 있다. 정부가 무리하게 개정·강행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령은 단순한 세제 정비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지난 수십 년간 대한민국 교회가 피 흘려 일궈온 해외 선교의 생명줄을 강제로 끊어버리고, 정당한 선교사들의 사역을 졸지에 ‘탈법적 증여’이자 ‘잠재적 범죄’로 낙인찍는명백한 교회 말살 정책이다. 1. 해외 선교를 ‘탈법 증여’로 낙인찍는 시행령의 폭력성 개정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령의 핵심은 비과세 혜택을 받는 공익법인의 범위를 국내 ‘거주자 또는 비영리내국법인’으로 철저히 가두어 버린 데 있다. 국경 너머 목숨을 걸고 현지인들을 섬기는 선교사들과 독립 교회를 세법상 공익 주체에서 원천 배제한 것이다. 결국 정당한 선교비 송금은 ‘최대 50%의 증여세 폭탄’이라는 무시무시한 칼날 아래 놓이게 되었고, 세금을 낼 수 없는 현지의 현실을 핑계로 돈을 보낸 국내 교회들까지 연대납세의무라는 족쇄를 채워 파산으로 내몰고 있다. 서민과 교회를 위한다는 정부의 모든 ‘선의’는 언제나 가장 잔인한 규제의 칼날로 돌변해 돌아왔다. 2. 글로벌 스탠다드를 배반한 한국 세정의 야만성 더 치 떨리는 대목은 이 정책이 국제사회의 상식과 철저히 격리된 ‘우물 안 개구리식 야만’이라는 점이다. 솔직히 이러한 정책은 이 지구상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지금 크리스천들 중에서 이러한 정책이 찬성하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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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의 종말과 거대 자본의 침투
2026년 여름,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가장 독창적이면서도 서민 친화적인 제도로 꼽히던 ‘전세’가 급격히 해체되고 있다. 현 정부의 정책적 압박과 ‘전세 사기’라는 프레임 속에서 전세는 어느새 악의 축처럼 낙인찍혔고, 그 빈자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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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의 기만과 문명의 침몰
메타인지적 리더십을 위한 실존적 경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명들과 강력했던 국가들은 언제나 외부의 물리적 침략이나 거대한 전쟁으로 인해 무너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부의 도덕적 해이, 책임감의 실종, 그리고 포퓰리즘적 마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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