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 운율로 셰익스피어 완역, 진실에 접속하는 기쁨 컸죠"(종합)

위클리 리더스 승인 2024.09.07 17:14 의견 0

"우리 시 운율로 셰익스피어 완역, 진실에 접속하는 기쁨 컸죠"(종합)
최종철 연세대 명예교수, 셰익스피어 전작 번역

민음사 전집 5천824쪽 분량…"어려웠던 건 밀도 높은 '맥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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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철 교수, 셰익스피어 전집 완간 기념 기자간담회 (서울=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 국내 셰익스피어 권위자인 최종철 연세대학교 명예교수가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셰익스피어 전집 완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9.3 ondol@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국내 셰익스피어 권위자인 최종철(75) 연세대학교 명예교수가 전작(全作)을 번역한 '셰익스피어 전집'(전 10권)이 완간됐다.

도서출판 민음사가 최 교수의 운문 번역으로 셰익스피어 전집 시리즈를 시작한 지 10년 만이자, 최 교수가 1993년 '맥베스'부터 셰익스피어 작품의 운문 번역에 매진한 지 30여년 만이다.

최 교수는 3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완간 기념 간담회에서 "민음사 전집이 내세우는 특징은 제가 1993년 국내에서 처음 시도한 운문 번역"이라며 "우리 시의 운율(삼사조·三四調)을 적용해 한글로 셰익스피어가 전달하는 감정과 사상을 리듬감 있게 살려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완역의 의미를 셰익스피어 작품의 수용사와 번역사에서 찾기도 했다.

최 교수는 "1920년대에 국내에 셰익스피어 부분 번역이 나오기 시작했다"며 "당시 셰익스피어 작품은 일본을 통해 들어왔는데, 일본은 언어 구조상 운문 번역이 어려워 (내용 전달을 위해 뜻을 풀어주는) 산문 번역을 거의 했다. 이번 전집으로 100년간 지속된 일본의 영향에서 문화적 독립을 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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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전집 번역한 최종철 교수 (서울=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 국내 셰익스피어 권위자인 최종철 연세대학교 명예교수가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셰익스피어 전집 완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9.3 ondol@yna.co.kr

민음사 전집은 2014년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 탄생 450주년을 맞아 전체 10권으로 기획됐다. 2014년과 2016년 셰익스피어 4대 비극과 4대 희극, 소네트 등으로 이뤄진 다섯 권을 출간했으며 10년 만에 문제적 비극과 로맨스, 사극 작품 등을 수록한 다섯 권을 추가로 펴냈다.

이번에 출간된 5권은 '셰익스피어 전집 2-희극 Ⅱ', '셰익스피어 전집 3-희극 Ⅲ', '셰익스피어 전집 6-비극·로맨스', '셰익스피어 전집 8-사극 Ⅰ', '셰익스피어 전집 9-사극 Ⅱ'다.

전집 10권은 4대 비극을 포함한 비극 10편, 희극 13편, 역사극과 로맨스 외 15편, 시 3편, 소네트(14행의 정형시) 154편 등 총 5천824쪽에 이른다.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은 대사의 절반 이상이 운문 형식이다. 대표작인 '햄릿'과 '리어왕'은 75%, '오셀로'는 80%, '맥베스'는 무려 95%가 운문 형식의 대사로 이뤄져 있다.

최 교수는 "셰익스피어는 등장인물의 계급이 높거나 정제된 형식을 갖춘 격식있는 대사는 운문을, 하층민의 대사나 코미디는 산문을 썼다"고 설명했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약강 오보격 무운시'(약강 음절이 시 한 줄에 연속해 다섯 번 나타나고, 각운의 규칙이 없는 시) 형식을 우리 시의 운율인 삼사조를 기본으로 변형해 리듬감 있게 읽히도록 했다. 예컨대 '햄릿'의 명대사인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은 '존재할 것이냐, 말 것이냐, 그것이 문제다'로 옮겼다.

그는 "삼사조 운율이 소리의 느낌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는 데 시간이 걸렸다"며 "한 줄에 들어가는 글자 수가 제한되니 조사와 목적격을 생략하고 압축적인 비유를 해 산문 번역보다 긴장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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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셰익스피어 전집 이미지 [민음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가장 번역하기 어려웠던 작품으로는 '맥베스'를 꼽았다.

최 교수는 "'맥베스'는 밀도가 가장 높아 어려웠다"며 "'약강 오보격 무운시'에 짧은 시행, 상징·압축된 문장이 많았다. '맥베스'를 첫 번역 작품으로 택한 것도 가장 시적이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30년간 그만두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고된 작업이 주는 기쁨이 고통보다 컸다"고 돌아봤다.

그는 "셰익스피어는 감정의 진실에 접근한 사람"이라며 "그의 극작품이 주는 기쁨은 진실에 접속하는 순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은 사람과 안 읽은 사람은 내면의 변화가 다르다"며 "소리 내어 읽어보면 그런 순간이 오는데, 그걸 경험한 사람과 아닌 사람은 인생을, 자기를,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고 조언했다.

이번 전집이 완간되기 전인 2016년 최 교수의 스승인 이상섭 연세대 명예교수가 운문 번역한 셰익스피어 전집(문학과지성사)이 출간되기도 했다.

최 교수는 두 전집의 다른 점을 묻자 "직계 은사를 평가하기 어려우니 독자에게 맡기겠다"며 "다만, 은사님은 10년 안에 방대한 작업을 했는데, 좀 서둘러 하셨다는 느낌은 있다. 질적인 평가와 비교는 입에 올리기 어렵다"고 답했다.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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