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우즈베키스탄. 길거리에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조금씩 늘어나고, 수도 타슈켄트에는 새로운 외국 자본이 들어오며 도시의 겉모습은 더 세련되어졌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 한 주일 아침의 교회당 예배는 여전히 눈치 속에 조심스레 진행된다. 입구에는 경찰차가 주차되어 있고, 예배가 끝나면 성도 몇 명이 조용히 조사실로 불려간다. 정해진 규칙은 없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다. ‘무언가를 어기면 안 된다’는 무언의 룰.
우즈베키스탄은 독립 이후 지금까지 두 명의 대통령 아래서 통치되어 왔다. 초대 대통령 이슬롬 카리모프는 25년 넘게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했고, 2016년부터 정권을 잡은 샤브캇 미르지요예프는 “개혁”을 외치며 다소 다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종교 문제에 있어서는 여전히 민감하고 통제 중심의 입장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정부는 종교의 자유를 원칙적으로 보장한다고 말한다. 2025년 2월, 정부는 새로운 종교 관련 법률을 발표하며 “다문화, 다종교적 사회의 평화로운 공존”을 강조했다. 법률에는 “종교를 믿을 자유와 믿지 않을 자유 모두가 보호된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겉으로 보기엔 인권적 진보로 해석될 수 있지만, 실제 종교인들의 삶은 여전히 굳게 닫힌 현실의 문 앞에서 멈춰 있다.
‘자유’라는 단어의 무게
종교의 자유를 말하기에 앞서, 우즈베키스탄의 기독교 공동체는 오랜 시간 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들과 싸워왔다. 단순한 교회 등록 절차가 몇 년씩 지연되거나 반복 심사를 요구받는다. 건축 허가는 지역 사회의 반대와 관료주의에 막히고, 교회 이전은 아예 불가능한 경우도 허다하다. 설령 정식 등록이 되어 있더라도, 경찰의 불시 방문이나 사소한 행정 실수에 대한 벌금 부과는 언제든 가능하다.
심지어 교회 행사에 외부인이 참여하면 ‘불법 집회’로 간주되기도 한다. 2023년, 부활절 예배를 준비하던 한 교회는 독일에서 초청된 음악가들의 참여로 인해 예배 자체가 중단되었다. 초청자 명단이 사전에 신고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이와 같은 사건은 단발적 해프닝이 아니다. 우즈베키스탄 내 교회들이 경험하는 구조적 현실은 반복적인 제한과 불확실성, 감시 속의 종교 활동이다. 국가의 통제는 점차 정교해지고 있고, 그 안에서 기독교 공동체는 신중한 침묵과 조심스런 행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숫자로 말하는 현실
국제 기독교 박해 감시 단체인 ‘오픈도어즈’는 우즈베키스탄을 종교 자유가 심각하게 제한된 국가 중 하나로 분류하고 있다. 2012년에는 세계 기독교 박해 순위에서 7위를 기록했고, 이후 다소 하락했지만 여전히 2024년에는 25위 안에 머무르고 있다.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우즈베키스탄 내에서 신체적, 정신적 폭력 또는 차별을 경험한 기독교인은 48명에 달하며, 2024년에는 그 수가 60명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종교자유위원회(USCIRF)는 한동안 우즈베키스탄을 '특별우려국(CPC)'으로 지정했으나, 2018년부터는 '특별감시국(SWL)'로 분류하며 상황의 부분적 개선을 언급했다. 그러나 정부의 공식 지표와는 달리, 신앙인들이 겪는 실질적 억압은 여전히 일상에 깊이 배어 있다.
다음 세대를 향한 질문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종교 교육 문제는 민감한 주제 중 하나다. 기존 법에 따르면 18세 미만의 자녀에게 종교 교육을 시키는 것은 사실상 금지되어 있었다. 이는 교회학교나 주일학교가 법적 위반 요소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하며, 다음 세대에 신앙을 전수하는 통로 자체가 차단되는 구조다.
교회 지도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그룹과 가정 중심의 성경 공부를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모두 '비공식'적인 방식으로, 발각될 경우 언제든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위험을 안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단지 행정상의 문제를 넘어서, 한 사회가 가지고 있는 ‘종교에 대한 두려움’과 ‘기독교에 대한 오해’를 반영하고 있다.
바람은 아직 멀다
이번에 발표된 2025년의 종교법 개정안은 분명 한 걸음의 진보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실질적 자유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행정의 투명성, 사회적 인식 변화, 그리고 종교적 소수자에 대한 관용은 단기간에 이뤄지지 않는다.
우즈베키스탄의 교회는 지금도 존재를 말하지 않는다. 다만 존재 ‘한다’. 더 이상 특별한 주장이 아니라, 단순한 삶의 방식으로서의 신앙을 지키고 있다. 예배는 소란스럽지 않다. 찬양은 작지만, 멈추지 않는다. 감시가 존재하는 한, 믿음은 더 조용하고 깊은 언어로 드러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특혜가 아니다. 단지 신앙을 이유로 방해받지 않을 권리, 다른 시민들과 동일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보통의 일상이 전부다. 2025년, 우즈베키스탄은 종교 자유의 문을 조금 열었다. 그러나 그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은 아직, 그리 강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