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감이 교차한 게오르기우의 첫 '토스카' 한국 무대

김형석 승인 2024.09.08 19:00 의견 0

만감이 교차한 게오르기우의 첫 '토스카' 한국 무대
예전 같지 않은 발성과 음색…연륜으로 보완하며 감동 선사

무대서 가장 빛난 테너 김재형…서울시오페라단 8일까지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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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토스카' 공연 장면 [서울시오페라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용숙 객원기자 = 브누아 자코 감독의 오페라 영화 '토스카'(2001)로 전 세계에서 토스카 역의 대명사가 된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기우(59)가 5일 저녁, 한국 무대에서는 처음으로 이 배역을 노래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막을 올린 서울시오페라단의 '토스카'에서다.

2002년 예술의전당에서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와 듀오 리사이틀을 펼친 30대 전성기의 게오르기우를 기억하는 관객들에게는 만감이 교차하는 공연이었다. 머리와 가슴속에는 한 성악가의 찬란한 순간이 박제되어 있지만 현실에서는 '시간을 이기는 무대예술은 없다'는 사실을 실감해야 했기 때문이다.

발성의 탄력과 음색의 윤기는 예전 같지 않았다. 하지만 게오르기우는 관록의 토스카답게 능숙한 테크닉으로 약점을 보완하며 까다로운 악구들을 무난히 소화해냈다. 오페라 초심자들에게는 전설적인 토스카의 무대 장악력과 개성 넘치는 연기를 마지막으로 체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극 중에서도 오페라 가수가 직업인 '디바' 토스카 역에 현역 소프라노 중 게오르기우 만큼 캐릭터 면에서 어울리는 가수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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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토스카' 공연 장면 [서울시오페라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16년 로열오페라 '토스카'에 게오르기우와 함께 출연했던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은 1막과 2막에서 게오르기우와 팽팽한 긴장을 주고받으며 능숙한 연기를 펼쳤다. 경찰 수하들을 거느린 첫 등장부터 악당의 카리스마가 빛났고 1막 피날레에서 '테 데움'을 뚫고 나오는 아리아 '가라, 토스카'도 효과적으로 불렀다.

그러나 사무엘 윤의 상대적으로 밝은 음색과 명료하고 절도 있는 연기는 소름 끼치는 혐오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그것이 연출가의 해석인지 가수 자신의 해석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사악하고 잔인하며 비열하고 노회한 인물의 복잡한 내면을 표현하기에는 지나치게 젊고 활력이 넘치는 이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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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토스카' 공연 장면 [서울시오페라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시오페라단에서는 게오르기우의 출연을 중점적으로 홍보했지만 이날 공연을 성공으로 이끈 최고의 주역은 토스카의 연인이자 혁명파 화가 카바라도시 역을 노래한 테너 김재형이었다.

주로 유럽 무대에서 라다메스, 칼라프, 오텔로 등의 드라마틱한 배역으로 활약 중인 김재형은 이날 공연에서 카바라도시의 '오묘한 조화'와 '별은 빛나건만'을 열창해 관객들을 감탄과 열광으로 이끌었다.

또 2막에서 끔찍한 고문을 당한 후 테이블 위에 올라서서 "비토리아!"(Vittoria!·이겼다!)를 외칠 때는 마치 바그너 '발퀴레'의 지그문트를 노래하는 듯 엄청난 성량을 과시했다.

스카르피아를 살해한 토스카의 용기를 찬양하는 3막에서는 더없이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표현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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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토스카' 공연 장면 [서울시오페라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국내와 독일에서 인정받는 지휘자 지중배는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함께 결이 새로운 '토스카'를 들려줬다. 1막에서는 성악진을 배려해 지나치게 절제된 연주를 들려준다는 느낌도 들었으나 2막부터는 세심하고 신중하면서도 극적 긴장과 감정의 폭발을 충분히 살린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필요 이상으로 드라마틱한 과장을 섞는 흔한 푸치니 연주와는 달리 군더더기 없고 음영이 섬세했으며, 특히 부천필하모닉 현악 파트의 유려함이 돋보인 연주였다.

안젤로티 역의 베이스 최공석, 스폴레타 역의 테너 김성진, 성당지기 및 간수 역의 베이스 전태현 등 조역 가수들 모두 배역의 개성을 최대한 살린 가창과 연기로 극의 몰입을 도왔다. 위너오페라합창단과 브릴란떼어린이합창단, 진아트컴퍼니 연기자들이 대극장의 넓은 무대를 채우며 극의 밀도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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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토스카' 공연 장면 [서울시오페라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대규모 출연진을 장면마다 적절히 배치한 표현진의 연출이 돋보였고, 세계에서 끝없이 진행 중인 전쟁의 참상을 '폭격 당한 성당'이라는 무대로 드러내 보인 아이디어도 설득력 있었다. 1막 '테 데움' 장면에서는 연기자가 대극장 오르간을 연주하듯 연기만 하고 실제로는 무대 뒤에서 오르간 연주가 이뤄졌으나, 소리가 약해 충분히 들리지 않았고 타악기 소리만 선명해 다소 아쉬웠다. 무대, 의상, 조명, 영상디자인 등 모든 면에서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가운데 약간의 현대적 파격을 추구한 무대였다. 임세경, 김영우, 양준모가 노래할 두 번째 캐스트도 큰 기대를 모은다. 공연은 8일까지.

rosina0314@naver.com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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