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의 발표는 세계 기독교 지형의 변화를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영국, 호주, 프랑스 등 한때 ‘기독교 문화권’이라 불리던 국가들이 이제는 기독교인이 인구의 절반을 밑도는 “기독교 소수 국가”로 재분류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인구 통계가 아니라, 기독교의 사회적 위치가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A photo from the ERLA


20세기 중후반까지 서구 사회에서 ‘기독교인’이라는 표지는 종교적 고백이 아니라 사회적 정체성이었다. 세례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다는 이유만으로 ‘기독교인’으로 집계되었다. 그러나 탈종교화(secularization)와 다원주의의 확산 속에서 형식적 소속은 급속히 무너지고, ‘믿음 없는 명목상 기독교’가 통계에서 사라지고 있다. 이는 아프리카, 아시아 등 성장 지역에서 ‘신앙 고백 중심 기독교’가 부흥하는 것과 뚜렷이 대비된다.

아이러니하게도, 한때 선교사를 보내던 국가들이 이제는 선교 대상이 되고 있다. 영국의 런던, 프랑스의 파리, 호주의 시드니거리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아프리카·아시아 출신 이민자다. 세계 기독교는 더 이상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지 않는다. 남반구에서 북반구로, 다수에서 소수로, 중심에서 변방으로흐르는 새로운 역사가 쓰이고 있다.

성경은 교회가 다수를 점할 때보다, 소수로서 순례자적 정체성을 가질 때 더 깊이 순결해졌음을 보여준다. 초대교회는 로마 제국의 법과 문화 속에서 소수 종교였지만, 강력한 영적 생명력을 발휘했다. 오늘날 서구 교회가 맞이한 변화는 위기이자 기회다.
다수의 영향력을 잃었으나, 복음의 본질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기독교가 정치·문화적 우위를 잃을수록, 진정한복음 증거자로 서야 한다는 부르심이 더 선명해진다.

한국은 아직 통계상 기독교 비율이 높은 편이지만, 서구의 오늘이 우리의 내일이 될 가능성은 높다. 이미 젊은 세대에서 기독교의 사회적 신뢰도는 떨어지고 있다. 숫자의 우위보다 중요한 것은 복음의 순수성과 제자도의 깊이다. ‘다수의 종교’가 되려는 욕심보다, ‘충성된 소수’로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다수였던 시대의 그늘은 안일함이었다. 그러나 소수의 시대는 우리를 ‘증인’으로 부른다. 우리는 더 이상 문화적으로 자동 존중을 받지 않는다. 대신 삶과 사랑과 진리로 증거해야 한다. 서구 교회의 쇠퇴는 경고이자 초청인 것이다. 권력을 버리고 복음을 얻어야 할 때이며, 다수의 특권 대신 증인의 사명을 붙들고 달려나가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