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바로 위에는 큰 땅덩어리의 나라가 있다. 바로 몽골이다. 9월 중순의 날씨에 이곳을 방문했다. 이곳에는 1990년대 초에도 단 한 명의 기독교인도, 교회도 없었던 땅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700여 개의 교회와 약 5만 명의 신자가 있다고 한다. 이는 불과 30여 년 만에 일어난 기적 같은 성장이다.

몽골은 1990년대 이후 종교의 자유를 선포한 상황이다. 하지만 대다수가 아직 티벳 불교의 그늘에 있으며, 약 1.5-2% 인구가 기독교 신자가 된 상황이다. 그러나 지난 30년 동안 겉으로 드러나는 양적 성장은 이제 임계점에 다다른 듯하다고 많은 이들이 바라보고 있다. 최근 들어 몽골 교회의 성장이 정체하거나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진단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울란바타르 시내에서 젊은이들이 K-Pop 춤을 추는 모습과 비틀즈를 사랑하는 몽골인의 모습

현재 몽골에 거주하는 한인 약 2,500명 가운데 상당수가 선교와 목회에 관여해왔다. 현재 몽골 내 원주민 목회자는 약 400명, 해외에서 활동하는 몽골 출신 목회자들도 약 200명에 이른다고 한다. 또한 1세대 한인 선교사들이 교회를 세우고, 제자를 양육하던 시대는 이제 저물고 있다. 이처럼 세대가 교체되는 시점에서, 현지 목회자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선교사들과 몽골 목회자들 사이의 인식 차는 여전히 뚜렷하다고 한다.

많은 수의 한국 선교사들은 여전히 “몽골 목회자들을 존중하고 협력한다”고 답한 반면, 몽골 목회자들은 절반 이상이 “여전히 존중과 협력이 부족하다고”고 느끼고 있다는 설문 조사가 있었다. 존중과 신뢰의 간극이 협력의 발목을 잡는 셈이다. 물론 100년이 넘은 한국의 목회 현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몽골 목회자들은 “우리가 실수와 부족이 있어도 끝까지 믿어주고 간섭하지 말라”고 요청하지만, 한국 선교사들의 눈에는 그들이 여전히 미성숙하거나 자본주의적 목회를 지향한다는 우려가 남아 있기에 뒤에서 기도하고 또 앞에서도 이끌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더 큰 차이는 ‘몽골 교회가 현재 어느 단계에 와 있는가’에 대한 시각에서 드러난다. 한국 선교사들의 약 1/4은 여전히 ‘개척 단계’ 혹은 ‘부모 단계’라고 인식한다. 그러나 몽골 목회자들 가운데 절반이 넘는 55.6%는 이미 ‘이양’ 혹은 ‘철수 단계’에 이르렀다고 보고 있다. 같은 현실을 놓고도 서로 다른 프레임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는 곧 권한과 주도권을 둘러싼 갈등으로 이어진다. 몽골 목회자들은 자신들이 자립할 준비가 되었다고 보지만, 한국 선교사들은 아직 지도와 관리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 불일치는 결국 양측 모두에게 피로를 안긴다.

또한 몽골 목회자들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몽골 목회자들의 컨퍼런스를 자국인 몽골이 아닌, 한국 내에서 모임을 하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서, 한국 목회자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자국의 기독교를 부흥케 하기 위해서 당연히 몽골에 모여 미래지향적 모임을 가져야 하는데,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한국에서 그러한 모임을 갖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모임이 끝난 뒤에는 한국 내 교회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후원을 요청하는 행위에 대해서 많은 한국인 목회자들이 불편해 하고 있다. 이는 “영적으로 미성숙하다”는 평가와 맞물리며, 몽골 교회를 향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또한 팬데믹은 몽골 교회의 약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 시기 이후로 교회의 성장세는 멈추거나 후퇴했고, 신앙의 뿌리도 깊게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세속적 가치와 혼합주의가 들어올 여지가 생겼다. 이 가운데 “몽골 선교가 벌써 장벽에 부딪힌 것은 아닌가”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비판이 아니라, 향후 선교의 방향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경고음이기도 하다.

이렇게 볼 때, 몽골 교회가 직면한 과제는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진정한 ‘성숙’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그 성숙은 외부가 대신 이끌 수 있는 것이 아닌 듯 하다. 경제적 그리고 목회적 위의를 가진 한국 선교사들의 군림하는 태도나 지나친 간섭은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있어서 이젠 그들도 어느 정도 성장했음을 인정하면서, 서서히 멘토의 자리에서 그리고 코치의 자리에서 그들을 도울 때가 됐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선교는 관리가 아니라 동행이어야 한다. 신뢰는 의심이 아니라 위임을 통해 자란다. 몽골 교회를 향한 한국 선교사들의 과제는 통제에서 신뢰로, 지시에서 협력으로, 군림에서 동행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몽골 목회자들 역시 자립의 명분에만 머무르지 않고, 영적 성숙과 투명성을 스스로 증명해내야 한다는 점이다.

2025년 9월, 몽골 교회의 현재는 위기이자 기회라고 불 수 있다. 이 간극을 넘어 진정한 ‘이양’이 이루어진다면, 몽골 교회는 아시아 선교의 새로운 거점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뢰의 다리를 놓지 못한다면, 지난 30년의 기적은 멈춘 채 기억 속에만 남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