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싸울래'…전력 열세 우크라군, 사기 저하·탈영에 고전

김형석 승인 2024.09.09 12:12 의견 0

'안싸울래'…전력 열세 우크라군, 사기 저하·탈영에 고전
끝 안보이는 장기전…격전지 동부 전선서 "탈영·불복종"

러 본토 공격에 투입된 일부 병사 "작전에 회의적 반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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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코우스크 인근에서 러시아군과 싸우는 우크라이나군 포병.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상훈 기자 =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2년 6개월을 넘긴 가운데 전력 열세 속에 고군분투하는 우크라이나군이 심각한 사기 저하로 고전하고 있다고 CNN 방송이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특히 러시아군이 전력을 집중하는 동부 전선의 요충지 포크로우스크(러시아명 포크롭스크)에서는 사기가 떨어진 병사들이 진영을 이탈하는 사례가 빈발하면서 지휘관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동부 전선에서 부대를 지휘했던 6명의 우크라이나군 지휘관과 장교 등은 CNN과 인터뷰에서 탈영과 불복종이 큰 문제가 되고 있으며, 특히 새로운 동원령에 따라 전장에 끌려 나온 신병들이 이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했다.

포크로우스크 전투에 참여한 한 부대 지휘관은 "군인들이 모두 탈영하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이 그렇다. 신병들이 이곳에 오면 얼마나 상황이 어려운지 알게 된다"며 "그들은 엄청난 수의 적 무인기, 포대, 박격포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이 지휘관은 이어 "한 차례 진지에 들어갔다가 살아남은 사람은 다시는 그곳에 돌아가지 않는다"며 "그들은 진지를 떠나거나 전투를 거부하고 군대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으려 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은 지난겨울과 올봄 우크라이나군이 전력의 열세 속에 어려운 시기를 보내면서 더욱 심각해졌다.

병력과 무기의 열세 속에 고전해온 우크라이나군은 미국의 군사 지원이 몇 달간 지연되면서 탄약 부족을 겪었고, 이런 상황이 심각한 사기 저하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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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군의 러시아 쿠르스크 공격 후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우크라이나 병사들은 당시 다가오는 적을 확실히 볼 수 있는 상황에서도 탄약이 없어 포격하지 못하고 보병 부대를 보호하지 못해 죄책감을 느꼈다고 말하기도 했다.

동부 도네츠크의 또 다른 격전지 차시우야르에 배치된 부대 장교인 안드리 호레츠키는 "하루가 길다. 병사들은 참호 속에서 24시간 근무한다. 이들이 총을 쏘지 않으면 러시아군이 유리해진다"며 "러시아군 진군 소리를 듣는 병사들은 만약 총을 쐈다면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59 독립 기계화 보병 여단 장교인 세르히 체호츠키는 "3∼4일 주기로 군인을 교대시키려 하지만 드론 숫자가 많이 늘어나 너무 위험해졌다"며 "그래서 군인들이 더 오래 전장이 머물러야 할 때도 있다. 최장 기록은 20일이다"라고 상황을 전했다.

전장의 상황이 악화하면서 탈영병도 점점 늘고 있다.

우크라이나 의회에 따르면 검찰은 올해 첫 4개월 동안 주둔지를 포기하거나 탈영한 혐의로 약 1만9천명의 군인에 대한 형사 소송을 시작했다.

더욱이 일부 지휘관은 아예 탈영과 무단결근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군인들이 자발적으로 복귀하도록 설득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이 일반화되면서 첫 번째 탈영이나 무단결근은 처벌하지 않도록 법이 바뀌기도 했다.

호레츠키는 이에 대해 "일리가 있는 조처다. (처벌) 위협은 상황을 악화할 뿐이다. 똑똑한 사령관은 병사들을 위협하는 상황을 피하려 할 것"이라고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장악을 목표로 제시했고, 이 지역의 군사 및 공급 허브인 포크로우스크를 점령하는 것이 그 목표를 향한 주요 단계가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후 포크로우스크는 동부의 최대 격전지가 됐다. 러시아군은 수개월간 이 도시로 조금씩 진군해 왔고, 우크라이나군의 방어선이 무너지면서 최근 몇 주 동안 진격에 속도가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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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스크에 배치된 러시아군 [타스 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러시아군은 8일엔 포크로우스크에서 12㎞ 떨어진 동부 도네츠크의 노보그로디우카 마을도 점령했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이 지역에서 싸우는 우크라이나군은 병력 규모와 무기의 열세를 호소하고 있다. 일부 지휘관은 우크라이나군 1명이 러시아군 10명과 싸우고 있다고 추정한다.

또 보안상의 이유로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여단 장교는 부대 간의 의사소통 부족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기 저하를 우려해 일부 부대에 전체적인 전황을 알려주지 않는 경우도 있고, 이웃 부대가 후퇴한 사실을 알리지 않아 러시아의 공격에 노출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군은 지난달 개전 후 최대 규모의 러시아 본토 기습 공격을 단행해 적지 않은 전과를 올렸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포함한 우크라이나 지도부는 서방의 적절한 지원이 있다면 우크라이나군이 반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러시아 남서부 접경지 쿠르스크를 겨냥한 이 작전은 지친 우크라이나 군인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었지만, 쿠르스크 전선에 투입됐다가 지친 상태로 국경을 넘어 돌아온 병사들은 공격 작전에 회의적인 반응이 보였다.

쿠르스크에서 임무를 끝내고 국경을 넘은 공병 대원 중 한명은 "러시아에 들어간 게 이상했다. 이 전쟁에서 우리는 우리나라를 지켜야 했는데 지금은 다른 나라의 영토에서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병사는 "일부 부대는 교대 근무 후 휴가를 보내지만, 다른 부대는 쉬지 않고 싸운다. 시스템이 그다지 공평하지 않다"고 말했고, 또 다른 병사는 "3년간 이런 전쟁이 계속되니 이제 모든 것이 똑같은 느낌이 든다"고 하소연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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