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사막과 척박한 영혼의 땅 오만. 그곳에서 오늘도 이름 없는 이들을 향해 묵묵히 사랑을 흘려보내는 선교사가 있다. 태권도 도장에서,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그들의 정체성과 존재 가치를 회복시키는 일. 기적 같고 드라마틱한 변화들이 그곳에서 조용히 일어나고 있었다. 이번 인터뷰는 오만에서 사역 중인 조갈렙 선교사님의 긴 여정을 따라가며, 선교가 무엇인지, 예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깊이 묵상해보는 시간이었다.
Q. 펜데믹이 진행되었을 때는 어떻게 사역이 진행이 되었나요?
A. 2019년 11월, 펜데믹이 시작될 무렵 저는 태권도 도장을 열었습니다. 이 도장은 저희 사역의 정체성을 명확히 해준 귀중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매달 관광 비자를 받기 위해 아랍에미리트 국경을 넘나들어야 했고, 주변 이웃들과도 깊은 교제를 나누기 어려웠습니다. 늘 ‘외국인’이라는 모호한 정체성으로 살아가야 했지요.
그렇게 안정적으로 사역이 정착할 것이라 생각되었는데, 갑자기 펜데믹이 발생하고 모든 것이 변하게 되었습니다. 외부 활동은 금지되고 오로지 온라인으로만 가능한 일들만 허락이 되었습니다. 그 때 캐나다에 본거지를 둔 글로벌코칭리더십(GCLA)의 선교사를 위한 '코칭리더십' 훈련에 참가한 후, 태권도 사역도 마찬가지로 온라인으로 바꾸어야겠다고 결심하고, 모든 태권도 강의를 100% 온라인으로 전환했습니다. 그런던 차에 제 안에서 새로운 비전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습니다.
Q. 그 비전이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옵니다. 사역 중에 특히 마음에 남은 이야기가 있다면 나눠주실 수 있을까요?
A. 저는 장애인 제자들을 ‘스페셜’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이 정말 ‘특별’한 이유는 너무도 순수하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는 장애가 여전히 저주처럼 여겨지고, 겉으론 아닌 척하지만 실상은 심각한 차별과 외면이 존재합니다.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그들… 그래서 스페셜 제자들은 늘 주변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해줄 수 있었던 건 단지 작은 미소와 따뜻한 관심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작은 사랑에, 아이들은 온몸과 마음으로 저를 사랑해 주었습니다. 스페셜 제자들과의 태권도 수업은 일반 아이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수고와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제게는 그 시간이 오히려 치유요, 회복이었습니다. 솔직히 몇 번이고 이 사역을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들이 있었지만,바로 이 ‘스페셜한 아이들’ 덕분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습니다.
Q. 그러면 팬데믹 기간 중에도 스페셜 제자들을 위한 사역이 계속되었나요?
A. 팬데믹은 제게 ‘ALL IN’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다가왔습니다. 모든 걸 쏟아부으라는 부르심이었죠. 태권도 전공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닌 제가 태권도 도장을 연 지 겨우 1년 만에 온라인 태권도 대회를 주관하게 되었습니다. 그 대회를 통해 열방 곳곳에서 태권도로 사역하는 귀한 선교사님들과 태권도 사범님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잊을 수 없는 순간은, 저희 스페셜 제자 루이야가 온라인 대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하고, 이로 인해 오만 정부로부터 ‘올해의 장애인상’을 받게 된 일입니다. 시상식에서 상영된 영상 속 루이야는 K-태권도 도복을 입고 멋진 동작을 선보이며 자신의 이야기를 당당히 전했습니다. 그 모습에 저는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을,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느낄 수 있었습니다.
Q. 정말 자랑스러운 순간이셨겠어요. 그 이후 온라인 태권도 사역도 계속 이어지셨나요?
A. 사실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후 저희 가족은 13년 간 살던 오만의 국경 마을을 떠나 수도 무스카트로 이주하며 태권도 도장을 옮겼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현실의 벽 앞에 숨이 막혀, 우울증과 무기력증으로 깊은 방황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때 다시 제 마음을 붙잡아준 것은 루이야와의 태권도 수업이었습니다. 그의 변화를 기억하며, 하나님께서 제게 맡기신 이 사역의 본질을 다시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내가 여전히 해야 할 일이다’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Q. 그 비전은 아마도 새로 다가오는 시대에 걸맞는 비전이라고 생각됩니다. 어떤 비전이었는지요?
A. 네, 맞습니다. 이 시대는 흔히 ‘4.0 초융합 시대’라 불리죠. 선교 현장도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창의적 접근 지역’이라 불리는 10/40 윈도우 지역 중에서도, 선교사가 가장 적은 중동의 걸프 산유국 6개국은 개인이나 한 가정만으로는 사역을 유지하거나 생존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졌습니다.
그 와중에 하나님께서는 몇 해 전부터 ‘베미드바르(민수기의 히브리식 명칭)’라는 말씀을 통해, 거룩한 아름다움을 지닌 하나님의 군대를 세우라는 강한 감동을 주셨습니다. 바로 그 말씀 안에서 ‘걸프 선교사 사관학교’라는 비전이 태어났습니다.
이 사관학교는 무술(스포츠), 비즈니스, 예술 등 다양한 영역에서 크리스천 기업문화를 일으킬 ‘야전 사령관’을 훈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지금의 다음 세대는 ‘종교 탈피’와 ‘영성 무관심’ 속에 있습니다. 이들에게 단지 말씀만 전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들이 관심을 갖는 일자리, 실질적인 생계를 통한 ‘삶 속의 복음’이 필요합니다. 이 사관학교는 천국 문화를 삶으로 구현할 크리스천 리더, 곧 믿음의 CEO를 세우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Q. 정말 쉽지 않은 여정이었네요. 그렇다면 앞으로의 사역 방향은 어떻게 계획하고 계신가요?
A. 우선적으로, 걸프 선교사 사관학교를 통해 하나님이 택하신 다음 세대들을 훈련시키고자 합니다. 갈렙, 다니엘, 요셉, 사무엘과 같은 믿음의 야전 사령관들을 세우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속한 영역에서 천국 문화를 세우고, 열방의 다음세대에게 선한 영향력을 흘려보낼 수 있는 ‘믿음의 CEO’로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만남들을 이어주셨습니다. 한국의 글로벌 선진학교 설립 이사이신 남진석 목사님을 오만으로 불러주셔서 연합 사역의 첫걸음을 내딛게 하셨고, 이어 제가 학교를 직접 방문하여 원장님, 교장 선생님, 행정기획실 팀장님과의 실질적 협력을 약속받았습니다.
또한 ‘라스트콜’과 ‘요셉의 창고’ 김주한 대표님과의 만남을 통해 걸프지역에서의 비즈니스 선교 모델을 구체화하고 있으며, 올해 3월부터는 3인의 전문가, 이강락 대표님(기업컨설팅), 김호현 대표님(건설), 고봉익 대표님(교육 콘텐츠)과의 협력을 통해 오만과 UAE 후자이라 지역에서 총 8회의 온라인 비즈니스 교육과 11월 현장 컨설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Q. 이 모든 사역들이 중동 전역에 큰 변화를 이끌 것이라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향후 계획 중에 기도 제목이 있다면 나눠주세요.
A. 네, 지금은 걸프지역 MK(선교사 자녀)를 위한 여름 수련회를 기도하며 준비 중입니다. 한여름 50도에 육박하는 이 지역의 기후 속에서, 해발 2,000m에 위치한 ‘자벨 아크다르’라는 도시에서 수련회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이곳에서 그램책 코칭, 한방 치료, 비즈니스 강의, 인테리어 교육 등을 통해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MK들이 선교의 진로를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설계할 수 있도록 도우려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여정을 통해 한 사람, 한 세대를 세우시리라 믿습니다. 기도해 주십시오.
네 물론입니다. 이렇게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선교사님의 선교사로서의 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어찌 기도를 아니할 수 있을까요. 늘 선교사님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기억하면서 두 손을 함께 모으겠습니다.
태권도 도장에서, 이름조차 불리지 않던 아이가 미소 지을 수 있도록 만든 선교사의 삶. 그 여정은 화려하진 않지만, 그 누구보다 강력하고 위대한 사랑의 발자취였다. “내 자식들도 죽어간다”는 하나님의 탄식에 응답한 그 발걸음 위에 하나님은 지금도 생명을 일으키고 계셨다. 오직 주님만이 영광 받으시길, 그리고 이 사역에 함께하는 이들이 더해지길 소망하며 이 긴 인터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