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마다 맛도, 만드는 법도 제각각…기다림으로 완성한 한국의 장
씨간장 이어오고, 장독에 금줄 치기도…"한국 문화 정체성 근간"
인류무형유산 등재 확실시…"한국 장맛 널리 알릴 방법 고민해야"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장(醬)은 모든 맛의 으뜸이요, 장맛이 좋지 않으면 좋은 채소나 맛있는 고기가 있어도 좋은 요리가 될 수 없다." ('증보산림경제' 중에서)
된장, 간장과 같은 장은 오랜 기간 한국인의 입맛을 책임진 음식 문화다.
지역이나 장의 종류에 따라 조금씩 달랐으나 보통 겨울이 시작된다고 하는 절기인 입동(立冬)을 전후해 메주를 만들었고, 정월∼3월 무렵에 장을 담가 음식에 썼다.
한국의 장은 한 집안의 역사와 전통을 상징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집마다 독특한 맛을 내는 장은 그 자체로 별미이자 최고의 조미료로 여겼고, 각 가정에서는 재료를 준비하는 것부터 장을 만들고 발효시키기까지의 과정을 중요하게 여겼다.
대대로 이어져 온 씨간장을 고이 보관하거나 장독 주변에 나쁜 기운이 들어가지 않도록 금줄을 치고 버선을 거꾸로 붙여놓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국의 장 문화는 오랜 역사 속에 독창적인 요소를 더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운영하는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장과 관련한 기록은 1145년에 편찬한 역사서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처음으로 나온다.
신문왕(재위 681∼692) 대의 기록에는 683년에 왕비를 맞이하면서 보내는 납채(納采·신랑집에서 신붓집에 혼인을 구하는 의례) 품목에 '장'과 '시'(?)가 포함돼 있다.
왕실의 폐백 물품 중 하나로 거론했다는 점에서 당시 장을 어떻게 여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고려시대 전반에 관한 내용을 정리한 역사서 '고려사'(高麗史)에는 현종(재위 1009∼1031) 대인 1018년에 추위와 굶주림에 처한 백성에게 소금과 장을 나눠줬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조선시대 역시 왕실에서 장을 보관하는 창고인 장고(醬庫)를 두고 '장고마마'라 불리는 상궁이 직접 장을 담그고 관리할 정도로 장을 중요하게 여겼다.
특히 메주를 띄운 뒤 된장과 간장이라는 두 가지 장을 만들고, 한 해 전에 사용하고 남은 씨간장에 새로운 장을 더하는 방식 등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정혜경 호서대 명예교수는 한국의 장을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규정했다.
콩을 삶은 뒤 으깨어 일정한 크기로 뭉쳐 메주를 만들고, 이를 볏짚으로 묶어 적당한 온도에서 발효하고 건조하는 데만 해도 3개월 이상 걸린다.
이후 메주를 소금물에 담가 숙성시킨 뒤 액체를 달여 간장을 만들고, 건더기를 다시 발효해 된장을 완성하기까지 과정을 생각하면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드는 음식이라는 설명이다.
정 교수는 연합뉴스와 한 통화에서 "장은 365일 돌봄과 정성을 더해 만든 음식"이라며 "콩에서 출발해 우리 땅과 기후가 만들어낸 독특한 맛이 한국의 장 문화"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한국인의 장 담그기는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게 아니라 한국 문화 정체성의 근간을 이루는 소중한 유산"이라며 "문화적 생명력과 창의성을 유지하는 기반"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장 문화는 다음 달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가 확실시되는 상황이다.
유네스코 무형유산 보호 정부 간 위원회(무형유산위원회) 산하 평가기구는 5일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를 심사해 '등재 권고' 판정을 내렸다.
370년 종가의 전통을 이어 장류를 만들어 온 기순도 대한민국 식품명인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넘어 한국의 장맛을 잘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 명인은 "오늘날 세계 각국의 유명 요리사들이 찾아와 한국의 장을 칭찬한다"며 "조상 대대로 이어온 장 문화를 널리 알리고 제대로 보존하기 위한 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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