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에서 ‘잘 산다’는 말은 더 이상 물질적 풍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관계의 질, 마음의 평안, 삶의 의미,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얼마나 유익한 존재인가에 대한 자각까지, 오늘날의 웰빙(Well-being)은 훨씬 더 복합적이고 내면적인 개념으로 진화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웰빙의 핵심에 ‘자발적 봉사’가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지 남을 돕는 일을 넘어서, 봉사는 사람의 내면을 변화시키고 삶의 방향을 회복하게 하는 심리적 촉매제 역할을 한다.

발런티어와 심리적 웰빙의 관계


자원봉사를 오래 한 사람들을 만나보면 공통된 특징이 있다. 그들은 대부분 얼굴이 평안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중심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겉으로는 피곤할 수 있어도, 마음 깊은 곳에는 일종의 ‘존재의 에너지’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왜일까? 그 이유는 바로 ‘자발성’과 ‘의미’라는 두 키워드에 있다.

심리학자 데시(Deci)와 라이언(Ryan)의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은 인간이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이라는 세 가지 심리적 욕구를 충족시킬 때 동기와 삶의 만족감이 극대화된다고 말한다. 봉사는 이 세 가지 요소를 한꺼번에 충족시켜 준다. 내가 원해서 하는 선택(자율성),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유익함(유능감), 공동체 안에서 경험하는 연결감(관계성). 이 모든 것이 자발적 봉사라는 행위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와 같은 구조는 단순한 감정적 위로를 넘어 뇌과학적, 생리학적으로도 설명된다. 미국심리학회(APA)에 따르면 규칙적인 자원봉사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낮추고, 행복호르몬인 옥시토신과 세로토닌의 분비를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다. 즉, 주는 사람이 오히려 치유받는 역설적인 구조가 성립된다.

이는 철학과 신앙, 심리학이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궁극적인 행복 상태를 유데모니아(eudaimonia)라 불렀는데, 이는 타인을 위한 유익한 삶에서 실현된다고 보았다. 그 관점에서 보면 봉사는 단순한 도덕적 의무가 아니라, 인간이 본래 지닌 ‘의미 갈망’을 채워주는 존재 방식이다. 오늘날 긍정심리학의 대가인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도 이와 비슷하게, 진정한 웰빙은 '긍정적 감정, 몰입, 의미, 관계, 성취'가 균형을 이루는 상태라고 강조한다. 이 중 '의미(Meaning)'는 자발적 봉사와 가장 깊게 연결되는 요소다.

삶의 의미는 종종 고통 속에서 더 절실히 요청된다.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의 말처럼, 인간은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극한 상황 속에서도 타인을 도운 사람들만이 정신적으로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았다고 기록했다. 누군가를 위한 작고도 자발적인 행동이 삶의 방향과 인간다움을 지켜냈던 것이다.

기독교 신앙도 이 지점에서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하고"(막 10:45)라고 말씀하셨고, 사도행전 20장 35절에서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가르치신다. 이 말씀은 단지 신앙인의 윤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깊은 본질을 보여준다. 주는 삶이 결국 받는 삶보다 더 건강하다는 것을 영적으로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연구도 이를 뒷받침한다. 2017년 [Journal of Aging and Health]에 실린 연구에서는 노년층의 정기적 자원봉사 활동이 우울증 감소와 삶의 만족도 상승에 유의미한 영향을 준다는 결과가 나왔다. 다른 연구(Yeung et al.)에 따르면, 자원봉사자는 비봉사자에 비해 삶의 의미점수가 평균 20% 이상 높았다. 단순히 봉사를 ‘하는 사람’이 아닌, '나는 여전히 가치 있는 존재'라는 자각을 지닌 사람으로서 살아가게 된다는 의미다.

이 모든 연결을 통틀어 말할 수 있는 한 문장은 이것이다.
"자발적으로 누군가를 도우려는 마음은, 결국 자기 자신을 회복시키는 가장 빠른 길이다."

우리는 종종 삶의 공허함을 외부의 즐거움으로 채우려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강력한 회복의 방식은 ‘내가 누군가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누군가의 필요 속으로 한 걸음 들어가는 일이다. 봉사는 결코 영웅적 행위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사람을 건강하게 만들고 마음을 넉넉하게 만드는 행위다.

오늘 하루, 작은 자발성을 꺼내어 타인을 향해 나아간다면—
그 순간부터 우리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마음은 다시 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