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슈디 "표현의 자유 보장되지 않으면 다른 모든 자유도 죽어버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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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습 후 쓴 비망록 '나이프' 국내 번역출간…"혐오 이기는 사랑에 관한 책"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저는 '나이프'가 사랑의 힘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혐오의 대척점에 서서 혐오를 이기는 사랑 말이죠."
2년 전의 암살 시도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인도계 영국 작가 살만 루슈디(77)는 30일 연합뉴스 등 한국 언론과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비망록 '나이프'(Knife)를 "혐오를 이기는 사랑의 힘에 관한 책"이라고 규정했다.
2022년 8월 12일 미국 뉴욕주 셔터쿼의 한 야외 강연장에서 루슈디는 공개 강연을 준비하던 중 괴한에게 목, 가슴, 눈 등 온몸을 칼에 찔렸고 결국 오른쪽 눈을 실명하고 만다.
1988년 발표한 소설 '악마의 시'에 이슬람교를 모독하는 내용이 담겼다는 이유로 그해 이란 지도자 호메이니가 루슈디를 처단하라는 칙령(파트와)을 내린 뒤 오랜 시간 은둔생활을 해오던 그에게 처음 발생한 피습 사건이었다.
루슈디에게 흉기를 휘두른 뒤 현장에서 체포된 범인은 레바논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시아파 무슬림 남성으로, '악마의 시'의 내용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나이프'는 루슈디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테러'로 불렸던 흉기 피습 당시와 그 이후의 회복과 트라우마 극복 과정에서 했던 생각들을 정리한 비망록이다. 작가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담담히 기록한 이 책에서 "폭력에 예술로 답하겠다"고 선언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일어난 일을 소유하고, 그 사건을 책임지고 내 것으로 만들어 단순한 피해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나만의 방법이었다. 나는 폭력에 예술로 답하기로 했다."(209쪽)
무지와 증오로 가득 찬 청년의 범행에 사경을 헤매면서 작가는 자유의 중요함을 다시금 깨닫는다. 살아있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자유의 가치라고 그는 역설한다.
"생존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내가 말하는 생존이란 그저 살아 있는 것만이 아니라 내 삶을, 지난 이십 년간 너무도 조심스럽게 쌓아온 자유로운 삶을 되찾는 것이었다."(123쪽)
특히 루슈디는 작가로서 목숨처럼 지켜오고 소리 높여 중요성을 부르짖었던 표현의 자유에 대해 사근 이후 더 확고한 생각을 갖게 됐다.
인터뷰에서 그는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지 않으면 다른 모든 자유도 함께 죽어버리는 자유"라면서 "이 자유는 우파와 좌파 양쪽에서 모두 강력히 보호돼야 한다. 수많은 작가가 자신의 안전을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그렇게 해왔다"고 강조했다.
루슈디가 책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범인은 루슈디의 책을 채 두 쪽도 읽지 않았고, 그에 관한 유튜브 영상만 단 두 편 봤을 뿐이었다. 범인과 상상 속에서 나눈 대화를 그는 책의 6장에 쓰기도 했다.
"A(범인)가 책을 읽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가 성찰과 반성을 하며 살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6장을 쓴 이유는 그가 이 이야기의 일부가 돼야 하는 게 분명하고, 그를 나의 등장인물로 만드는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젠 그가 내 것이 됐다고도 말할 수 있겠죠."
작가는 오랜 세월 자신을 위험에 처하게 만든 시발점인 '악마의 시'에 대해선 "나를 공격한 자가 읽지도 않았던 내 책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면서 "그 책을 위협의 '그림자' 속에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 하나의 총체로, 문학으로서 읽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합리와 이성이 갈수록 힘을 잃어가고 그 빈자리를 무지와 혐오, 증오가 대체하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서 작가는 좋은 인생을 사는 것이 유일한 답이라고 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좋은 인생을 사는 것뿐입니다. 혐오는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혐오가 승리하는 건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가 아는 최선의 방법으로 나아갈 수 있을 뿐입니다."
루슈디의 작품은 이번에 번역 출간된 '나이프' 외에도 에세이 '진실의 언어'와 소설 '승리 도시' 역시 국내 출간 작업이 진행 중이다.
차기작을 묻자 그는 소설을 집필 중이라고 밝혔다.
"네, 기쁘게도 다음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소설이에요. 더 자세한 내용은 기다려야 아실 수 있겠습니다. 책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책이 완성된 다음이니까요."
문학동네. 강동혁 옮김. 3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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