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역사의 어느 지점에 서 있는가? 이 질문 앞에 서면 누구도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우리는 이전 어느 세대보다 빠르고 효율적인 삶을 누리고 있는 듯 보이지만, 정작 방향은 잃어버린 채 떠다니고 있다. 기술의 진보는 우리 삶을 더 나은 곳으로 이끌 것 같았지만, 그 속도가 우리의 영혼을 따라오지 못한 채 인간은 공허 속을 부유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AI와빅테크의 문명이 있다.
인생에도 청사진이 있을까?
오늘날 우리는 정보의 주인이 아니라, 정보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가 무엇을 보고, 듣고, 검색하고, 반응하는지는 이미 누군가의 알고리즘에 의해 설계되어 있다. 당신의 취향, 소비, 친구 관계, 정치 성향마저도 그들의 손 안에 있다. 당신이 자발적으로 클릭했다고 생각한 그것은 사실상 추천된 것이며, 그 추천은 당신을 ‘예측 가능한 존재’로 고정시키기 위한 거대한 시스템의 일부다. 우리는 더 이상 주체가 아니라, 데이터화된 소비자로 기능하고 있을 뿐이다.
세상은 말한다. “더 편하게,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 그러나 그 외침은 점점 인간의 고유한 존엄과 자유를 소거하고 있다. AI는 ‘어떻게’에 대해 탁월하지만, ‘왜’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알고리즘은 우리의 선택을 정제하지만, 그 선택이 어디를 향하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기술은 날로 정교해지지만, 인간은 점점 더 무기력해지고 있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많은 정보를 갖고 있으면서도, 가장 깊은 방향 상실을 겪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시대가 가장 먼저 훼손한 것은 바로 인간의 ‘정체성’이다. 세상은 더 이상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지 않는다. 인간은이제 소비 패턴으로 분류되고, 정치적 데이터로 분석되며, 디지털 발자국으로 추적된다. 사람은 상품이 되었고, 영혼은 클릭수로 가늠된다. 인간이 누구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은 사라졌고, 대신 ‘얼마나 영향력 있는가’가 평가 기준이 되었다.
이러한 시대를 이끄는 자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수많은 팔로워를 거느린 인플루언서들이고, 데이터를 장악한 기업가들이며,수익 구조에 따라 사회 구조를 바꾸는 빅테크 리더들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청사진이 없다. 그들은 방향이 아니라 속도를 팔고, 비전을 설계하기보다는 트렌드를 조작한다. 그들의 권력은 실시간 반응에 의존하며, 깊이 없는 즉흥성 위에 세워진다.
우리는 더 이상 ‘이끄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을 따라 웃고 울며, 우리가 보려던 것이 아닌 ‘보게 된것’에 반응한다. 나의 삶, 나의 가치, 나의 정체성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설계된 질서 속에서 조작되고 있다.우리는 소비자라는 말로 위로받지만, 사실상 우리는 이 시대의 피동적 객체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피로감은 점점 내면을갉아먹는다.
하지만 성경은 전혀 다른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하나님은 언제나 먼저 청사진을 그리고, 그에 따라 사람을 부르신다. 창세기 6장에서 하나님은 노아에게 막연히 “배를 지으라” 명령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방주의 길이와 너비, 층의 수, 창과 문까지 구체적으로 지시하셨다. 그리고서야 노아는 방주를 짓기 시작했다. 아브라함에게도 하나님은 “너의 후손을 통해 열방을 복 주겠다”고 말씀하시며, 그가 가야 할 땅을 먼저 보여주셨다. 모세 역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기 전, 하나님으로부터 성막과 율법이라는 명확한 질서와 설계를 부여받았다.
하나님은 방향 없이 부르시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이리 와봐” 하시는 분이 아니라, “내가 너를 위해 준비한 자리가 있다”고말씀하시는 분이다. 그분은 건축가이시다. 그리고 당신의 인생은 그 건축 안에 포함된, 존귀한 설계의 일부다. 당신의 성격, 과거, 실패, 능력, 고통… 그 어느 것도 우연히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청사진 안에는 당신이 있어야 할 자리, 당신이 해야할 일이 이미 포함되어 있다.
많은 이들이 이렇게 말한다. “뭐라도 하고 있으면 되지 않나?” “열심히 살면 되는 거 아니야?” 그러나 여러분, 열심은 방향을대신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길을 잘못 들었다면, 도착지는 점점 멀어질 뿐입니다. 정체성과 목적을 모른 채 살아가는 인생은, 설계도 없이 지어진 집과 같습니다. 겉보기엔 그럴듯해 보일지 몰라도, 결국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은 선포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말씀은 당신이 존재하는 이유, 당신이 살아 있어야 할 이유를 선언하는 구절입니다. 당신은 살아지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닙니다. 설계된 대로 살아가기 위해 부르심을 입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않으면, 인생은 그저 ‘살아지는’ 삶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면, 그분의 청사진에 따라 살아가는 ‘설계된 인생’이 시작됩니다. 목적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설계자 안에서 발견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장 5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태어나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으며,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이 말씀은 한 선지자에 대한 특별한 선언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일반적인 시선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모태에 짓기 전에 이미 아셨습니다. 그분의 설계 속에 당신은 이미 존재했습니다.
이제 질문은 이것입니다. 당신은 여전히 이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 소비자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설계도 속으로들어와 ‘청사진 있는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 하나님은 지금도 사람을 부르십니다. 방향 없이 헤매는 세대 위에, 하나님의 청사진이 다시 선언되고 있습니다. 그 설계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당신의 삶은 ‘반응하는 인생’이 아니라 ‘이끄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